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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Jan 03. 2023

돈은 고통인가 자유인가

나는 오늘을, 너는 내일을 -엄마의 여덟 번째 편지



아들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지난 한 해 아기로써 소임을 다하여 너는 무럭무럭 자랐고 말도 할 줄 알게 됐고 그러면서 더욱 귀여워졌다. 군말 없이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한 해를 보냈어. 장하다, 내 아들! 올해의 과제는 두 개. 쪽쪽이와 기저귀 떼기. 천천히,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머지는 하던 대로 잘하면 되니 어려울 것 없는 한 해가 되겠지? 올해도 잘 부탁한다~!



다만 엄마 아빠는 다소 어려운 한 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올 한 해는 경제적 한파가 예고되어 있고 아빠의 직업적 특성상 경기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 좀 그렇다는 말이다. 미리 각오를 했는데 닥쳐보지 않아서 어떨지. 엄마가 수강생을 좀 받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뭐, 받고 싶다고 수강생이 저절로 오는 건 아니지만 모집을 좀 적극적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주저되기도 하고. 올해는 엄마의 개인전이 두 개나 잡혀있어서 시간의 여유가 있을까 싶다가 또 다 해낼 수도 있지 하는 생각도 들고 갈팡질팡이다. 두고 보자. 자연스레 가닥이 잡힐 테니.


엄마가 지난 편지에 이어하고 싶은 이야기는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관해서야. 엄마는 지금껏 살면서 돈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를 들었고 해 왔다. 한 때 엄만 늘 "돈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어. 그게 무슨 자랑이나 되는 양.

돈이 없다 없다 해야 상대로부터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서였을까 정말로 가난하고 돈이 없다 생각해서였을까 돈이 드는 일에 대한 핑계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물이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 엄마는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돈 없다. 돈이 어딨냐. 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고 자랐으니까. 그때는, 정말 돈이 없는 걸까? 어른이 이 정도의 돈도 없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IMF때 정말로 위축되는 가계 경제에 혹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아, 우리 집은 정말 돈이 없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

돈에 위축되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뭔가를 할 때 돈 앞에서 작아지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그런 말을 입에 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의 주변에도 "돈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았어. 그런데 몇몇은 "그래서 빚을 내서 쓴다" 였지. 은행에서 대출 '이빠이' 당겨 쓰는 법을 배워 되는대로 빚을 내서 돈을 쓰는 사람들이 엄마는 참 신기하게 보였어. 대출의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돈만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고 싶은 것 잘 사고, 하고 싶은 것 잘하고 한마디로 돈을 잘 쓴다는 거였다. 없으면 빌려다 쓰면 그만인, 돈이 그들에게는 쉬운 것일까.

본인 명의의 부동산을 은행에 저당 잡히고 빚을 내 생활비로 쓰는 사람,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는 사람, 카드 돌려 막기로 생활하는 사람, 빚을 갚아야 할 무거운 채무로 생각지 않는 듯한 형태로, 심지어는 사치까지 하며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는 것을 알고 아주 놀랬지. (뭐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빚'에 의해 지탱된다지만 희생양이 될 필요는 없잖아? 빚을 못 갚는 순간 자본주의의 냉철한 칼날에 희생자가 될 텐데.)


엄마의 엄마는 빚을 내면 빚부터 갚아야 하고 없으면 안 쓰고 사치라고는 모르고 살았다. 지금도 엄마에게 빚부터 갚으라고 가끔 말씀하시니까. 그것도 그런 게 지금 금리가 매우 올라서 빚내고 사는 사람들은 힘든 지경이거든. 빚으로 사는 엄마의 주변 사람들은 별로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모르지 내부사정은.

그 유명한 워런 버핏의 짧은 영상 하나를 말해줄게. 어떤 여자가 공돈이 우리 돈 천만 원 정도 생겼는데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이 백발의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더구나. "지금 쓰고 있는 빚이 12%라고 했나요? 세상에, 빚부터 갚으세요. 저는 평생 12% 이자의 빚은 낼 생각조차 안 해봤는데. 맙소사, 12% 이자의 빚이라니..."



이도야. 한 가지는 정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절대로 생산성이 없는 빚은 내지 마. 네가 만약 사업을 하게 되어 돈이 필요해서 은행의 빚을 져야 한다면 12%짜리 빚을 지더라도 20% 벌어들일 수 있으면 괜찮아. 그러나 확신이 없는 사업이거나 아니면 그냥 생활비로 사치로 소비하게 될 용도로 절대 빚을 내서는 안된다. 그리고 빚은 습관이야. 분수 이상의 소비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빚을 질 일이 거의 없지. (물론 코로나19 같은 상황의 생계형 대출은 예외다. 그 누구도 예상 못한 특수한 상황이 닥쳐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


마찬가지로 돈도 습관이야. 돈에 대한 습관을 잘 들여놔야 한다. 어릴 때부터 투자하고 돈을 모으고 불리는 재미를 알아야 해. 너의 자산이 불어나는 경험을 한다면 금방 질릴 자잘한 물건들을 소비하는데 허튼 돈을 쓰지 않게 돼.

엄마는 말했듯 너를 임신하고 경제 공부를 하면서 투자도 같이 하게 됐다. 네가 태어나면서 부모님들이 주신 돈도 잘 모아두었고 네가 크면서 여기저기서 얻는 용돈들도 투자하고 모으게 할 거야. 내가 너의 돈을 모아주자 너의 아빠가 약간 빈정대며 장난감이라도 좀 사주지 하더라. 그러나 나는 네가 "엄마, 왜 이렇게 돈을 차곡차곡 많이 모아주었어요? 그때 나 장난감이나 사주지!"하고 화낼 거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나지도 않는 어릴 때의 비싼 장난감들을 사느라고 네 용돈을 허비한 줄 알면 오히려 화낼 것 같은데.




흔히 투자에서 '복리의 마법'이라는 말을 한다. 시작은 아주 미약한 돈이지만 그것이 시간이라는 마법을 입으면 어마 어마한 돈이 되는 거야. 네가 어릴 때부터 모은 돈은 2,30대 성인이 되었을 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겠니. 뭘 하든 든든한 힘이 되지. 엄마는 그 누구에게라도 투자를 빨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복리가 마법을 발휘하려면 하루라도 빠른 게 좋거든. (같은 맥락으로 워런 버핏의 그 유명한 스노볼 이론도 있다.)


그리고 엄마는 너에게 결코 돈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물론 엄마는 평소에 늘 검약하는 생활을 할 거고 네가 보면서 자라게 할 거야. 그러나 우리가 맛있는 것을 함께 먹을 때, 좋은 것을 함께 볼 때, 여행할 때, 아낌없이 돈을 소비할 거야. 설사 돈이 궁해서 그런 일을 못 할 때라도 돈의 핑계는 대지 않으련다. 돈 앞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돈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어. 좋은 것을 함께 할 때 요긴한 중요한 가치로서 말이야.


엄마가 앞서 말한 사례 기억나니? 모두가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부자 되는 길로 가지 않기 때문이란 어느 금융인의 말. "wavelength"란 표현이 생각나네.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는 방향이면 저절로 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부의 길로 가는 방법엔 많은 길이 있겠지만 엄마에게 와닿은 단 한 가지의 방법은 '꾸준함'이었어. 가치투자라는 말이 아직도 비웃음을 사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마는 엄마는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주파수'가 탁 와닿았달까.

생각해 봤다. 내가 창업을 해서, 혹은 온라인에서, 혹은 각종 투자에서 매달리며 과연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그건 그 주파수가 와닿은 사람의 몫일 거야. 엄마는 그런 화려한 이벤트들보다는 그저 묵묵히 나의 세계를 펼칠 글 안에서 그림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쪽이 맞아.

하루하루 책 보고 공부하고 10년 20년을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가는, 나아지는 것. 조금씩 조금씩 돈을 포함한 모든 것을 쌓아가는 것. 인내심 있게 가치투자 하는 것. 그것이 엄마가 얻은 결과야. 그리고 이런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지. '경제적 재능'이 다소 떨어지는 나로서는.

물론 조금씩 돈을 쌓으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지. 그러니 엄마가 노력을 한다. 나의 창의력으로 노동력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노동은 어쨌든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값진 가치야. 노동을 절대 등한시하면 안 돼. 금융자본도 노동자본의 성실한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이 모두 공평하게 평균 수명을 산다고 치면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니 예외로 하고- 우리는 긴긴 100년을 길게 보고 살아야겠지. 돈을 한 번에 왕창 벌고 싶은 욕심에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고 네가 하루하루 나아가는 방향대로 돈과 네가 같이 커가는 방향을 잡는다면 네 인생 중반기를 접어들었을 때, 너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거야. 아니 돈이 너에게 자유를 안기는 건가.

돈이 없어 불행하고 있어도 잘 못 다뤄 불행하고 돈만 너무 많아서 삶이 시시하고 돈만 있으면 다 될 것 같고 그래서 끝없이 갈구하고 돈과 관련된 모든 문제점에 사로잡히면 어쨌든 수전노, 손에 든 돈의 노예로서 고통을 당한다.

삶을 사는데 어느 정도 돈과 관련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어. 그러나 사로잡히지는 않아야 된다. 그러니 여기서도 습관이다. 성실히 다져온 평소의 삶의 습관이 돈의 습관과 연결되어 있으니 혹 실수로 옆길로 떨어지더라도 곧 본 길로 되돌아올 수 있단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돈이 없다는 소리를 딱 그쳤다. 돈을 긍정적인 가치로서 대우해 주기로 했고 무엇보다 말은 그대로 된다니 말이야.

엄마는 너를 키울 많은 날들에서 돈 때문에 고민하고 두려움을 느낄 때 지금보다는 덜 흔들릴 것 같다. 나도 성장해 있고 돈 벌 궁리도 제법 진전이 되어 있을 테니까. 지금의 나를 좀 더 여유 있게 회상할 테지. 그리고 너는 이 편지의 당부가 네 일상과 같음을 알아채게 될 거야. 네가 엄마의 바람대로 잘 따라준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 자신에게 꾸준히 하는 가치투자란 것을 명심하고. 늘 잘할 거야. 너를 믿는다. 또 나를 믿고!


있으면 신명 나고 힘도 나고 없으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미묘하고 이율배반적인 돈. 그것은 집착하면 멀리 달아나고 그것에 아랑곳없이 삶을 온전히 살아낼 때 어느새 다가와 저절로 쌓인다더라.

돈과 친해지려면 먼저 내 인생과 친해져야 될 거야. 돈 말고 내가 오롯이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잘 살면, 돈 때문에 무슨 일이든 목메는 게 아니면, 돈에서 자유로우면 돈은 어느새 다가와 친해지자고 덤비겠지. 돈을 생각했을 때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늘 움켜쥐면 빠져나가고 마는 모래같이 슬쩍 다가와서도 이내 흩어져버리고 말걸.

돈이라는 녀석은 알고 보니 웃긴 데가 있다, 그렇지?




JAN. 2023. 엄마의 여덟 번째 편지




성실히 쌓아 올린 블록같이. 돈을 대하는 태도와 습관도 이와 같다. 이도가 쌓고 엄마가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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