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애쓰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으니 Nov 27. 2021

비와 당신 아니고 아빠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아람~

비 오는 날이면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던 우리 아빠다. 드문드문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참 따뜻했던 기억이다. 수업이 끝나고 신발을 신으려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전교생이 운동회를 할 만큼 넓은 운동장엔 실내화 가방을 우산 삼아 뛰어가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나도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는 선수처럼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일단, 정문까지 쉬지 말고 뛰자!’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한 번에 뛰어가긴 무리여서 학교 정문, 문방구, 슈퍼를 휴게소 삼아 집까지 뛸 생각이었다.


후-- 큰 숨을 한번 내쉬고 곧장 뛰었다. 다 커서 본 운동장은 생각보다 너무 작았는데, 그땐 광활한 대지 같았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까지 가는 길이 왜 그리도 먼지. 뛰는 동안 이미 많은 비를 맞았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만 더 큰 것 같았다. 정문까지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비가 얼마나 왔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던 아줌마들 사이에 우리 아빠가 보였기 때문이다.     


“은희야~” 하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좋았다. 너무 좋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까지 가는 길을 익히느라 부모님과 몇 번 같이 다닌 이후론 쭉 혼자 다녔다. 아빠, 엄마는 가게에 있으니까 데리러 올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늦은 저녁까지 아빠, 엄마의 퇴근만 기다렸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부잣집 딸이 된듯했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아빠와 나는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집까지 걸어갔던 것 같다. 무릎을 꿇어 내 키만 해진 아빠는 운동장을 뛰어오면서 홀딱 젖은 내가 춥지 않게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덮어주었다. 그냥 일반적인 수건이었는데도 아빠가 덮어준 수건은 마치 담요처럼 크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젖은 머리와 옷의 물기를 꼼꼼하게 털어주시고선 곧 마른 옷을 꺼내 주셨다. 그리고 다시 가게를 나가셨던 것 같다.     


아빠와 나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쌓여있는 따뜻한 기억들은 사랑 확인 도장이 꾹 찍힌 증명서 같다. 굳이 어떤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어느 날 그 기억을 꺼내 볼 때면 여전히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날 가게에 있던 아빠는 내리는 비를 보며 딸을 생각했을 것이다. 비를 맞고 혼자 집으로 갈 딸 생각에 가게 문을 닫고 학교로 향했을 것이다. 아빠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간질간질해진다.     

비 오는 어느 날.

“아빠, 서울엔 비가 와요. 초등학교 때, 비 오는 날 저 데리러 오신 거 기억나세요? 집에 와서 수건으로 닦아주던 것도요. 그래서 비만 오면 아빠 생각이 나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단해요~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라는 아빠의 답장에 웃음이 나왔다. 아빠도 기억하고 있다니! 나는 왜 아빠도 기억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    

 

나는 아빠, 엄마를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만 생각난다. 분명 서운하고 상처 받았던 날도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애써 기억해야 떠오를 정도다. 내 문자를 받고 기분 좋아진 아빠가 엄마에게 자랑했나 보다. 거기까지 좋았는데 기억력 좋은 엄마가 안 해도 될 말을 했단다.     

“당신, 은희 고등학교 때, 비가 억수같이 오니까 차로 애 좀 데려다주라고 하는데도 끝까지 안 데려다 준거는 기억 안 나요?”라고.

아빠는 이 한마디를 하시고 아무 말씀 없으셨단다.

“니~는 와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노! 마음 아프그로”

     

마음 아프그로.

누군가를 떠올릴 때 마음이 저릿하면 ‘사랑’ 아닐까.

초등학교 때보다 고등학교 때 기억이 더 생생할 만도 한데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지만 우리 아빠는 내게 참 다정하다. 지금도 집에 내려왔다가 서울로 가는 전날이면 “은희야, 이거 니 쓸래? 이기 억수로 좋은 기다~”라며 집안 여기저기서 뭔가를 꺼내오신다. 그리고 먼 길 가는 동안 짐이 널브러지지 않도록 꼼꼼하게도 포장하신다. 딸이 들고 가기 편하도록.

이 글을 쓰는데 ‘띠링’ 메시지가 왔다. [아빠♥] 에게서.


다시 서울 가는 딸, 데려다주는 아빠의 뒷모습을 찍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