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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Jul 27. 2017

아무것도 아니라서 더 슬픈

우물에서 막 길어낸 우울

1.

소위 정상이라 일컬어 지는 범주는 얼마나 좁은가. 실존하기는 하는가. 정말 존재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가.


2.

내가 사는 곳이 정상의 범주 밖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까지 걸린 시간 8년. 마른 우물 속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그리면서도, 그 바닥까지 어떻게 내려갔는지 알지 '않았다'.  입밖으로 캐캐 묵은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야 그것이었구나. 그게 바로 나를 심연으로 당긴 힘이라는 걸 인지했다.


3.

말할 수 있다는 건 괜찮아졌다는 뜻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랬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일부는 빛을 보았고, 고름이 마르고 상처가 옅어졌다.


4.

흉터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건, 내가 우주비행사가 아니었던 탓이다. 한 번 벌어진 자리는, 중력이 약해진 틈을 타 피를 꺼내 보였다. 중력은 예고 없이 약해지기를 반복했는데, 정상 기압 따위는 실험실에만 존재하는 듯 했다.


5.

아무 것도 아닌 말에 피가 고여 흘렀다. 식구도 많은데 굳이 너희한테까지 뭐하러 상복을 입혔겠냐는 지나가는 문장에 찔린 미세한 구멍 사이로 공기가 새어 나온 탓이다. 무심함에 문득 화가 나서, 그날 그 우물에 사다리를 다시 내렸다.

6.
우물로 내려갈 수 있는 그 구멍은 바람이 나온 자리.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다.


7.

Then d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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