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선택! 까막눈 잡기 놀이
올해 6살이 된 둘째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가고 있었다.
아직은 추운 겨울날, 둘째는 날씨가 덥다며 갑자기 점퍼를 벗었다. 그러고는 옷을 뒤집어 입고 점퍼 뒤에 달린 모자를 쓰며 얼굴 전체를 가렸다.
둘째: 엄마! 점프해야 되면 알려줘~
평온하게 길을 걷던 나는 언제나 그렇든 아이의 놀이 도우미가 된다. 자신도 무서운지 나와 맞잡은 손을 더 꼭 잡고 걷기 시작했다. 눈을 가리니 아이의 모든 감각은 살아나고 평소와 같은 작은 움직임도 크게 느끼며 숨죽여 걷다가 또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둘째는 자신이 시작한 놀이가 만족스럽다.
길을 걸을 때도 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에겐 평범한 누군가에겐 유별난 6살 아이. 그 아이는 집에 와서 오빠를 만났다. 둘째는 한때 유행했던 토끼 모자를 찾아 쓴다. 덩달아 오빠도 토끼 모자를 찾아 쓴다. 그러고는 토끼 모자로 눈을 가리고 둘은 까막눈 잡기를 시작했다.
까막눈 잡기 방법: 무엇으로든 눈을 가린다. 그리고 눈을 가린 사람이 가리지 않은 사람을 잡는다.
규칙은 간단하다. 가린다! 잡는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도망가야 한다는 걸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잡으려는데 도망가는 건 본능이고 그 본능을 설명하면 놀이는 지루해진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어른만큼 길지 못하다.
놀이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다툼도 일어난다. 그렇게 아이들은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오빠의 지시를 따르기도 하며 자신들만의 규칙을 정한다. 그 크고 작은 언쟁 속에서 아이들은 정형화된 규칙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집만의 놀이 규칙을 만들어 나간다. 그렇게 아이들은 나와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율하는 법을 배운다.
때론 울며 엄마를 찾는 막내를 안아줘야 하기도 하고 오빠에겐 상식인 규칙마저 거스르며 억지를 부리는 동생이 답답한 아들을 위로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이제 곧 사회를 경험하게 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의 완벽하지 않음을 기다린다.
까막눈 잡기 놀이에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매트를 깔아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매트를 깐다는 것은 규칙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다. 매트 외에 카펫 등 경계를 발로 느낄 수 있는 울타리를 함으로써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돕는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는 안전도우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
까막눈 잡기! 이 놀이의 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선택이었다.
유치원 아동은 모든 자발적인 활동을 놀이, 타인에 의해 요구되는 모든 활동을 일이라고 응답했다. (Nancy R. King)
까막눈 잡기가 6살 아이에게 놀이 일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 놀이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10살 오빠는 어땠을까?? Nancy R. King의 연구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의 놀이는 즐거움의 요소가 있을 때라고 응답했다. 올해 10살이 된 초등학생 오빠는 자의든 타의든 재미있으면 되는 거였다. 이 내용에 왠지 웃음이 난다. 10살 오빠와 아주 딱 맞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난 모르겠고! 그냥 재밌으면 돼!"
아이들과의 놀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놀이가 놀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놀이라는 말은 참 흔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놀이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