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말을 걸어오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고, 그 문장이 담고 있는 힘에 매료되어 여러 번 곱씹어보는 그런 책은 읽는 동안 생각으로 응답해 나가며 읽게 된다.
이 날은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을 읽을 때였다.
사실 이 책의 시작 부분은 철학자의 생각이 정돈되지 않은 글로 흘러가고 있었다. 초반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내용 또한 추상적이고 심오해서 읽는 중 잘못된 요리를 주문한 것 같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불안과 죄, 정신과 종합(영혼+육체)에 대한 내용이 구체화되면서 '하! 이 사람 천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며 감탄하게 되었다.
이때 내가 읽은 내용들을, 생각들을 좀 더 많은 글로 남겨두었다면 좋으련만, 곱씹어보고 음미하다가 휘발되어 버렸다.
유일하게 기록한 내용은, 내가 외워두고 싶다며 적어둔 아래 문장이다.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으로, 정신이 종합을 정립하려고 하자 자유가 자신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다가 그 몸을 의지하기 위해 유한성을 붙잡을 때 일으키는 현기증인 것이다
1. 정신은 육체와 영혼의 종합을 정립하려고 한다.('나'에 대한 실체를 자각)
2. 자유는 자신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현재 나의 상태를 넘어선 기회들을 희망함.뜬구름까지 뭉게뭉게)
3. 자유는 들여다볼 때 의지할 곳이 필요해 유한성을 붙든다 (이상적인 가능성에 대해 현실을 자각)
4. 자유가 유한성을 붙잡을 때 현기증을 일으킨다
자유는 사람을 도전하게 하지만, 가능성에 대한 유한함을 인식할 때 자유는 멈칫한다.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현기증이 일어나는 원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마치 절벽 위에서 하늘의 새를 보며, 창공을 가로지르는 자유를 상상해 보지만, 날 수 없다는 유한성, 발을 삐끗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유한성의 인식이 불안을 자극한다.
어려운 내용일까? 하지만 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 문장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는 한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