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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준희 Mar 06. 2023

순천 선암사의 고매화

 선암사 매화를 보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순천으로 갔다. 봄꽃 피는 남도로 가는 먼 길이지만 세 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가끔 가볼 만한 거리이다. 선암사의 매화는 고매화라서 다른 지역보다 늦게 핀다고 등명스님은 말씀하셨다. 천 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매화나무는 아직 작은 꽃봉오리만 달려 있었다. 이걸 새들은 따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린다고 어떤 노스님이 말씀하셨다.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웃으며 맛나게 먹어버리는 새들의 먹성이 재밌다. 그 새들도 일 년 동안 그 맛을 기다리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도착해 보니 절 안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했다. 분홍구슬 같은 꽃봉오리가 온통 나뭇가지에 맺혀있고 몇 그루만 꽃을 피웠을 뿐인데도 그 향기에 취해 버렸다. 매화는 대단한 꽃이었다. 사군자에 넣어놓고 그림을 그리며 숭배할만한 품격을 갖추었다. 

 원통전을 지나면 오십 주의 매화나무가 안쪽 숲길까지 늘어서 있는데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천 년의 세월 동안 그곳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기관에서 보호수로 지정하려고 와서는 스님들께 얼마나 된 나무냐고 물어보았는데 스님들은 천 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단다. 그러자 그건 너무 긴 것 같다고 육백 년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안내문에는 수령이 육백 년 정도 되었다고 쓰여 있긴 하다. 그 누구도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누가 보아도 노목인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이 고매화는 다른 매화랑 달리 오래 기다려야 꽃을 피운다고 한다. 매화는 설중매라고 불릴 정도로 이른 계절에 피지만 이 고매화는 삼월 중순이 넘어가서야 꽃을 피운다고 한다. 워낙 고령이라 기운이 달리는 것 같다고 등명스님은 말씀하신다. 

 등명스님은 템플스테이 교장으로 불리는데 템플스테이를 오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아침의 차담에서는 말씀마다 감동을 주신다. 스스로는 엄격한 계율 속에 생활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위로를 주시는 특별한 분이다. 그분을 뵈러 다시 온다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다. 거기에 나도 낀다. 두 달 전 일박 하면서 경험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어서 꽃을 본다는 핑계로 다시 온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위트와 유머로 받아주시는 스님의 성품을 본받고 싶다. 

 매화나무를 비롯한 절 안의 나무들은 부지런한 스님들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여러 개의 쇠버팀목에 의지해서 버티고 있는 와송은 얼마나 긴 세월을 견뎌왔는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동백, 겹벚꽃, 영산홍 등등의 꽃나무들은 계절에 맞추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도량을 가진 선암사는 그곳에 있는 분들이 길고 긴 세월 동안 쉼 없이 가꾸어 온 선물 같은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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