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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이

눈처럼 깨끗한 세상

by 하글

겨울에 태어난 열 살짜리 조카는 사계절 중 눈이 오는 겨울을 가장 사랑한다.


그래서 만나면 극한 추위에도 종일 눈놀이 하러 바깥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데, 마침 지난주 전북 지역에 조카가 사랑하는 눈이 아주 많이 내려서, 하얀 풍경을 기대하며 함께 고창 상하 농원을 찾았다.


눈 내린 넓은 평야 위 농원과 작은 목장에서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하고 밖으로 나와 산책하고 눈놀이를 하다가 언니의 제안으로 농원 꼭대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우리 저 끝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까? 저기 위에 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날이 추워서인지 오르는 구간부터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울타리를 따라 곱고 흰 눈을 푹푹 밟으며 금빛 억새와 소나무가 자란 언덕을 오르자 꽁꽁 언 바다가 보였다.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을 보았다. 저물어가는 해 바로 아래에서 똑같이 붉게 반짝이는 물그림자를 보았다. 온통 하얗기만 하던 도화지 위 순식간에 그려진 그림 같은, 눈밭 위에 드리워진 또 하나의 눈부신 풍광을 오래도록 보았다. 아이의 시선처럼 깨끗한 시간과 공기 속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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