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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글 Oct 09. 2024

계절이 그린 그림

계절이 그림으로 태어난다면

넓고 높은 푸른 하늘, 고루 분사되는 마른 햇살의 화사함, 한 철 피고 지는 꽃처럼 노랗게 붉게 알록달록 변해가다 떨어지는 낙엽들.


여름에게 몇 번의 작별을 고했는지 모르게 긴 무더위가 지나가고 비로소 찾아든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나를 차갑게 훑는다.


선명해지는 가을의 빛과 온도. 놀랍도록 쨍한 하늘과 나무의 생생한 색감으로 그려진 것만 같은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땡볕에서 달궈진 몸을 잠시 지나가는 그늘의 바람 속에서 식힌다.


입맛 돋우는 계절, 호르몬의 노예인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계절. 마음은 밖을 그리는데 왜인지 몸은 자꾸만 늘어진다. 그럼에도 애써 몸을 일으켜 한껏 고개를 들고 산책하는 일이 꼭 하고 싶은 숙제처럼 떠오른다. 가을에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선명한 색감의 청량감을 만끽해야 하니까. 그 아름다운 풍경이 눈으로 맘으로 그리듯 서서히 나에게도 번져 건조하고, 나태해진 나를 부추긴다. 가을엔 부지런히 지내야 더 행복할 수 있다고. 가을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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