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방문자
오남식. 형사2과에 소속된 그의 이름이었다. 왜 나를 찾아왔을까. 그것도 6년이 지나서. 그러나 선화는 그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어떤 증거를 가지고 찾아온들 어떤 진척도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은 그녀를 살인범, 방화범, 사이코패스로 규정지었다. 진실이 어떻던 간에 선화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김무정이 살아있어요.”
남식은 선화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선화의 눈썹 끝이 가늘게 떨렸다. 무정이 죽었기에 선화가 원한으로 방화를 저질렀다고 온 세상이 손가락질 하지 않았던가. 그런에 어떻게 무정이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기억을 잃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해요. 병원 기록에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어요. ”
선화는 남식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맑고 찬찬한 검은 동자가 흰자와 대비되어 깨끗하고 선명해 보인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의 총기가 보인다. 선화는 감옥 벽의 떨어진 페인트를 바라보며 자신과 남식이 얼마나 멀리 떨어진 사람인가 생각한다.
“그래서요. 무정씨가 방화를 저지르고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도 찾으신건가요?”
“…아뇨.”
“?”
“찾아야죠. 같이.”
남식은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진달래 옆 화단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민서의 어린 시절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남식이 내미는 사진 한 장에서는 마치 자신처럼 회벽의 표정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민서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얼굴에선 어떤 표정도 읽어낼 수 없다.
“조카 분이 자살 시도를 했어요.”
그 순간 선화는 등줄기에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그 어떤 곳에서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는 민서는 벌써 다섯 번째 전학 중이라고 했다.
“지금…민서 어디에 있어요?”
“민서는 교회 관련 재단 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잠시 입원 중입니다. 극단적 시도를 다시 할 수 있어…”
“저한테 이걸 알려 주시는 이유가 뭐죠?”
지금까지 플랫했던 선화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왜 민서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물음보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늘 생각해왔던 선화의 불안한 마음이 현실화 되었다는 사실이 선화는 지금 그 무엇보다 더 끔찍하다.
“CCTV 보관소 화재 날 손실된 영상이 일부 복구가 됬어요. 변장상태이긴 했지만, 걸음걸이, 신장 모두 김무정씨와 비슷합니다.”
남식은 cctv사진을 내밀었다. 선화의 눈에도 보관소 벽을 따라 걷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 무정처럼 느껴졌다.
“저는 6년 전에도 선화씨가 진짜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왜 경찰이 된 줄 아세요?”
선화는 고개를 들었다.
“…저희 아빠 여기에서 돌아가셨어요.”
남식은 그의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제 손으로 아빠의 누명을 풀어주려고 보관소에 접근했죠. 저희 아버지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는데. . .그와중에 선화씨의 cctv를 보게 된거에요.”
선화는 남식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나를 두번이나 찾아온 사람.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감옥에서 돌아가셨기에 선화의 누명도 같이 풀어보고 싶다는 사람. 남식은 그날 선화에게 두툼한 서류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선화의 남은 운명을 송두리 째 바꾼 서류 봉투였다.
한선일보 기자인 희원은 책상에 반쯤 걸터앉고 힐을 벗어버렸다. 희원은 한 쪽 벽면 가득한 사진과 신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벽면에는 대선후보들의 자금흐름이 깨알같이 정리되어 있다. 그 속에서 희원은 후보들과 다양한 단체들과의 적당한 유착관계도 어렵지 않게 포착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주연식의 경우 정치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깊은 내용을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한가지 명백한 점은 한 의학연구소로 많은 투자자금이 흘러갔다는 것 정도였다. 희원은 주연식의 사진을 가볍게 두드렸다.
희원은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후배 정하가 갖다 놓았음이 틀림없을 우편물 더미에서 낯익은 핑크색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그 편지는 희원이 5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받은 것으로 컴퓨터로 인쇄된 글이 아닌 잡지나 신문에서서 음운을 하나하나 떼어 일직선으로 나열한 이상한 편지였다. 그 편지의 내용은 방선화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그 이상한 편지는 지난 5년 동안 6월과 11월에 빠지지 않고 선화에게 도착했다. 그러나 올해 6월에는 이상하게 편지가 오지 않았다. 희원은 장난이 여기에서 끝난 것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9월이 된 지금 다시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여전히 비슷했다. 방선화가 진범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조금 변한 것이 있다면 늘 경기권이었던 우체국 소인이 충청도로 바뀌었다는 것과 주소를 눌러 쓴 듯한 흔적이 있다는 것. 그때 정하가 오피스의 문을 두드리며 들어섰다.
“방선화. 웃기지 않아? 선자를 빼면 ‘방화’잖아. 우리 정말 이 편지 누가 보냈나 추척…”
정하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왜그래?”
“선배. 청진교도소에서 방금 방선화가 자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