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빨

샬롯의 카메라

by 여름타자기


최악이다. 새벽 다섯 시. 목이 심하게 부었다. 시차도 다 꼬여 비몽사몽이다. 정말 오늘 스탠바이에서는 안 불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제일 싫어하는 시드니행 비행을 나가야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이곳 카타르 도하에 오면서부터 심하게 꼬인 것 같다. 남들은 외항사 승무원이라 돈도 많이 벌고 멋지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줄로만 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말 내 삶은 눈물 나기 짝이 없다. 석달 전 나는 유방 혹 제거 수술을 위해 3주 병가를 내고 한국에 왔다. 그것 때문에 정말 내 비행 로스터는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막 수술을 한터라 몸이 정상이 아닌데 지난 달에는 118시간 비행을 했다. 그 중에 바로 도하로 돌아와야만 하는 턴 비행이 네 번이었다. 유럽행 중 체류시간이 채 스물 세시간이 안되는 비행을 하다보니 체류지에선 다음 비행을 위해 몸을 아끼느라 무조건 잠부터 잔다. 무리하면 무조건 다음 비행은 비몽사몽 시체처럼 해야만 한다. 몇 달동안 체류지에서 호텔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이 어느 나라인지, 몇 시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자친구와도 문자로 헤어졌다. 도저히 한국에 있는 사람과는 만날 방도가 없었다. 정해진 수순이었기에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지금 있는 시드니 호텔방에서도 생각한다. 비행을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사실 유방의 혹도 비행 중 피폭되는 방사선 때문일 수 있다. 동남아시아 크루들은 환율 차이가 있어 소득이 꽤 짭잘하지만 나의 경우는 목돈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즐겁게 비행을 하고 싶었던 처음의 포부와 소망이 매일의 똑같은 서비스와 진상 고객들, 망가지는 시차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유니폼을 입고는 플럼색 립스틱을 바른다. 거울 속 나의 모습은 그래도 꽤나 그럴 싸 해 보인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한숨을 쉬고 부은 발을 구두에 구겨 넣었다. 9월의 시드니는 꽤나 쌀쌀하다. 버스는 금새 공항에 크루들을 내려주었다. 나는 정신을 차려 보고자 필리핀 동료 시에나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카페 창 바깥으로 세계 곳곳의 여객기가 살짝 보였다. 그 앞에는 휠체어에 탄 소녀의 뒷 모습이 보인다.


“어머 쟤 또 여기서 보네.”


나는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물었다.


“왜. 자주 봐?”


“응. 올 때마다 저기서 비행기 보고 있어.”


소녀의 휠체어는 전동인 듯 했고 머리는 곱슬거리는 금발로 휠체어 등받이 뒤로 늘어져 있었다.


“시에나 너는 바로 다카 간다고?”

“응. 정말 최악이야.”


시에나는 먼저 브리핑룸으로 떠났고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그때였다. 소녀가 탄 휠체어가 내 쪽으로 빙그르르 돌았다. 소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해 눈길을 돌렸지만 계속해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 섬뜩해져서 브리핑실로 향하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때였다. 소녀가 탄 전동 휠체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요.”


소녀가 말했다.


“네?”

“네. 혹시 부탁 좀 들어 줄 수 있나요?”


나는 소녀의 푸른 눈을 들여다 보았다.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소녀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엉겹결에 봉투를 받아들었다.


“이게 뭔가요?”

“일회용 카메라에요.”


소녀는 나에게 다음 비행하는 곳의 사진을 찍어서 봉투에 넣어 자신에게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때 오늘 같이 비행하게 될 크루가 다가와 서두르자고 말했고 나는 소녀에게 대충 알겠다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 날 비행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바로 곯아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그 다음 날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보내고 다음 비행을 또 준비해야만 했다. 짐을 또 싸면서, 소녀가 준 봉투가 눈에 밟혔지만 애써 무시했다. 나는 호텔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으니 찍어 줄 사진도 없었다.


몇 주 후 다시 시드니에 갔을 때 나는 그 소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좀비같은 모습이었다. 커피를 마시러 공항 카페에 들렀을 때 나는 소녀를 마주쳤다.


“기다렸어요.”


나는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미안해요…그게 바빠서…”


그러자 소녀는 잠시 힘이 빠진 듯 한숨을 쉬더니 이내 괜찮다며 전동 휠체어를 돌려 다시 창가로 향했다. 소녀의 뒷모습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소녀 옆으로 다가갔다.


“저기…”


소녀가 나를 쳐다 보았다.


“직접 여행하며 찍어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제 병 때문에 여행은 안된데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비행기는 꿈도 못 꾸죠.”

“아….”

“그래서, 저 대신 일회용카메라를 여행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탁한 거에요.”


나는 미안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제가 스튜어디스라 세계 이곳 저곳을 재미있게 여행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에요. 비행기, 호텔방, 집이 전부거든요. 사진 받아보고 실망할 수도 있어요.”


그러자 소녀가 환히 웃었다.


“상관없어요! 전 비행기만 타도 좋겠어요. 그래서 매일 공항에 오는 거에요.”


나는 소녀의 이름을 물었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녀의 이름은 샬롯이었다. 나는 도하에 돌아와서 소녀가 주었던 봉투를 찾았다. 노란색 코닥이라고 적힌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일회용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다음 비행은 대만이었다. 하루 반나절을 쉬는 동안 서류 처리를 위해 본사에 가기 위해 도하 시내로 나왔다. 나는 카메라로 매일 보던 분수와 지상철 그리고 이국적인 도시 거리 사진을 찍었다.


대만 비행에서는 갤리에서 컵라면을 먹는 크루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졸려하는 나를 위해 크루가 만들어준 아포가토도 찍었다. 타오위안 공항에 내려서는 유명한 벽화 사진을 찍고 호텔에 도착해서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내 불쌍한 구두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다.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했다. 우버를 불러 대만 시내로 나가 망고빙수와 딤섬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카메라를 봉투에 넣어 샬롯에게 부쳤다. 몇 주 뒤 샬롯은 영상 하나를 나에게 보내왔다. 내가 찍었던 사진들을 인화해서 짧은 영상으로 만든 여행 브이로그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매일 보던 사람들과 비행기, 공항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몇 일 뒤 샬롯에게서 두 번째 봉투가 왔다. 그 안에는 예쁜 스티커로 꾸민 일회용 카메라가 들어있었다. 나는 비행 때마다 샬롯의 카메라와 함께 여행했다. 다카, 런던, 바르셀로나, 사이프러스, 한국 등 세계 여러 곳을 찍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망설여졌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고심해서 찍어야 할 만큼 사진에 담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샬롯은 내 사진을 직접 인화하고 영상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회수가 적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샬롯은 게시물에 꼭 나를 태그했는데 덕분에 나의 SNS 구독자도 꽤 늘어났다.


그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비행을 하는 동안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사는 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별 것 아닌 사진 한 장이지만 내 발로 뛰어 찍는 세상의 모습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보는 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의 주름은 조금씩 펴져 갔다. 가끔 시드니 비딩이 될 때에는 샬롯을 만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비행 시간도 꽤 쌓여 이코노미에서 드디어 비지니스로 승격을 앞두게 되었다. 덕분에 서비스 강도도 조금은 쉬워지고, 수당도 늘어나게 될 참이었다. 그런데 몇 주째 샬롯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걱정이 된 나는 여러 가지 루트로 연락을 취해봤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토록 자주 갔던 시드니도 비딩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샬롯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나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나는 크게 당황했다.


그 주 스탠바이를 하다 시드니 비행에 불렸다. 체류시간이 23시간도 안되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면 안 되었지만 샬롯이 너무 걱정이 되었기에 가짜로 병가를 하루 내었다. 그리고 우버를 불러 무작정 소포에 적힌 샬롯의 집 주소로 향했다. 차가 멈춰선 곳은 시티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주택가의 아담한 단층 주택이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벨을 눌렀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문이 열리고 샬롯의 푸른 눈을 닮은 중년의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나를 경계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BY라고 하는데요. 도하에 사는 스튜어디스 친구…”


그러자 중년의 여성은 눈빛이 바뀌더니 나를 반갑게 안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방 안은 단촐하지만 따뜻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녀는 거실 쇼파에 앉으라고 한 뒤 커피를 내어 왔다.


“미스 한이 보내 준 사진 때문에 그 녀석이 얼마나 행복해했었는지 몰라요. ”

“그런데…샬롯이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이제 그만하자고 하더라고요.”


샬롯의 어머니는 씁쓸하게 웃었다.


“요새 방 밖으로도 안 나와요. 몸에 근육이 많이 빠져서, 목 깁스를 하지 않으면 휠체어를 타기도 어렵고 침을 삼키기도 힘들어졌답니다. 많이 안 좋아졌어요. 낙담한 것 같아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샬롯을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이제 곧 낮잠에서 깰 시간이에요.”


나는 샬롯의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윽고 방 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나는 그녀의 방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문을 열자 나는 그녀의 방 안 광경에 놀랐다. 크게 난 창 하나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온통 우리가 찍은 사진들로 뒤덮혀 있었다. 샬롯은 나를 보고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본 샬롯은 많이 야위어있었다. 흰색 린넨 잠옷을 입고 누워있는 샬롯은 흡사 천사 같았다.


“어떻게…”

“네가 연락이 없으니 방법이 있나. 직접 와 볼 수 밖에.”


나는 웃으며 이야기 했지만 눈물이 자꾸 맺혔다. 샬롯은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데이베드와 큰 쿠션에 기대어 앉았다.


“미안해요. BY.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이제 인화도, 영상 편집도 할 수가 없어요.”


나는 샬롯의 야윈 손을 꼭 잡았다.


“괜찮아. 계속해서 사진은 보내줄게.”


그러자 샬롯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제 여행을 끝낼 때가 됬어요. 제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요. 이제 받아들여야 해요.

미안해요. BY”


나는 샬롯을 바라보았다.


“샬롯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어. 정말이야.”


샬롯은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창 밖에는 커다란 유칼립투스 나무가 서 있었다.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마워요.”


마치 작별인사를 하듯 샬롯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간이 다 되어 나는 샬롯과 작별을 해야만 했다. 나는 가방에서 노란색 코닥 일회용 카메라를 꺼냈다.


“샬롯. 이번에는 네 차례야.”


샬롯은 나를 쳐다보았다.


“이번엔 내가 이 카메라를 나 대신 여기로 여행 보낼게.”

“하지만…여기엔 별 게 없어요.”

“내 첫사진 기억 안나? 호텔방 구두 찍었던거? 너 엄청 좋아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샬롯이 희미하게 웃었다. 샬롯을 만나느라 병가를 쓴 덕분에 나의 다음 달 비행 로스터는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꾸준히 일회용 카메라를 국제 우편으로 보냈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샬롯의 카메라를 나에게 소포로 부쳐 주었다.


가끔 샬롯이 몸이 좋지 않을 때에는 그녀의 남동생이 대신 사진을 찍을 때도 있었다. 이번에는 내 계정에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영상으로 간단히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를 태그해서 말이다. 그 게시물에 샬롯은 하트를 누르기도 하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샬롯이 조금씩 활발함을 찾아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전해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사진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보석이 되기도 하고 시궁창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샬롯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곧장 시드니로 향했다. 샬롯의 추모식은 가까운 교회에서 열렸다. 샬롯 어머니는 추도사를 한 후 우리가 찍었던 사진 영상을 슬라이드 쇼로 틀었다. 샬롯은 생전 화장을 선택했고 그녀의 유골은 집에 보관된다고 했다. 추도식 이후 샬롯의 어머니는 나에게 필름 원본이 담긴 상자를 주었다. 나는 그녀를 마음 속 깊이 기억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도하로 돌아왔다.



삶은 똑같이 흘러갔다. 나는 여전히 거지 같은 비행 로스터를 감당해야 했고, 시차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제는 샬롯도 없기에 영상을 만들 사진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집으로 국제 우편물이 하나 배송되었다. 샬롯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소포 안에는 샬롯의 마지막 카메라와 쪽지가 들어 있었다. 그녀의 단 두 줄에 나는 웃어 버리고 말았다.



[LIFE IS TRAVEL. TRAVEL MUST GO ON!

-LOVE FROM CHARLOTTE-]


여기에 나는 그녀의 마지막 사진을 업로드 한다. 사진들은 모두 평범하지만 나에게는 샬롯의 숨결이 느껴지는 소중한 사진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우리의 여행 사진 계정을 운영하려 한다.



TRAVEL MUST GO ON!

-LOVE FROM B.Y.





끝.



#나크작 #림크작 #앤크작님과함께서간소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