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윤 Feb 19. 2024

카푸어는 푸어가 아닙니다.

그래도 차는 남잖아요??

국어의 가장 큰 장점은 말을 새롭게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 있던 두 단어를 합쳐서 함성 어를 만들어버리고 그 말을 오래 써버리면 그 말이 새로운 신조어가 되어 그대로 남아버린다. 나는 이런 단어들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재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내 나잇대에 한참 유행하던 단어들도 있었다. 그중 세태를 풍자하던 단어들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하우스 푸어"였다. "하우스 푸어"는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한 참 유행하던 단어로 집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다 받친 "영끌족"을 위한 단어였다. 우리의 아버지대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한 "하우스 푸어"는 어떨 때는 조금 눈물이 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한, 우리네 서민들을 대변하는 안타까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가장의 든든함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시대가 지났다. 00년도 세대도 지나고 2010년대도 지났다. 나는 아직도 가끔 2024년을 2014년으로 쓸 때가 있는데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흘렀다고 느끼는 중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시간은 너무도 빠르다. 시간을 대변하는 문화는 그보다 더 빠르다. 스마트폰이 나온 것을 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는 스마트 폰을 반으로 접고 다니는 것도 본다. 몸이 반으로 접히는 폰을 보면 예전의 폴더폰이 떠오르는 나는 이제 완전히 늙다리인 것이다.




하우스푸어는 이제 자연스레 사라졌다. 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집값이 너무 올라버렸다. 아무리 영끌을 해도 집을 살 수 있는 가격을 자연스레 넘어서 버리고, 그 위에 형성된 집값을 보고 있자면 사람이 미치고 팔딱 뛸 정도다. 아니 그래봤자 소용없다. 웬만한 벌이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평생에 자가를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한 번쯤 계산을 해봤다. 그냥 기준은 내가 인턴으로 받는 300여만 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30평대 아파트를 사려면 얼마나 걸릴까??라는 무척 어리석은 계산이었다. 현재 대전은 평당 2,000만 원이라고 계산을 했을 때, 30평의 아파트 가격은 약 6억이다. 그럼, 내 페이 300만 원에서 한 번 계산을 해보면, 내가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돈 100만 원을 저축을 한다고 했을 때, 그냥 그 돈으로 모아서 사려면 꼬박 60여 년이 걸린다. 영혼을 판다고 해도 영혼의 가격을 높이 쳐준다고 해도 적어도 40여 년 이상은 걸린다.


40여 년, 내 나이 현재 마흔다섯이라고 할 때, 열심히 하면 여든다섯에는 30평의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할 수 있다. 신나는 일이다. 물론, 내 페이가 300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개원을 했을 때 벌 수 있는 돈까지 감안한다면 예상되는 기간을 훨씬 짧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뭐 그런데... 30평대 아파트 하나만 마련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까짓 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집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사는 것이다. 세상에는 또 의외로 집이 남아 돌아서 전세도 있고, 월세도 있다. 한 달 페이가 700만 원 정도까지만 올라도 혼자 사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다. 결혼을 가정한 내 가정이 생기지 않으면 남자 혼자 먹고 사는 데는 편안하다.


이런 생각은 곧 나보다 젊은 층에도 더 빨리 퍼져나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계산적 능력이 상당히 늦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래서 젊은 층은 "Yolo"(이 단어도 나온 지 꽤 오래되었지만)를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멋진 선택이다. 애써 힘들게 가정을 이루고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인생을 버리느니, 한 번 사는 인생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이 너무 부러웠다.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한 단어가 바로 카푸어이다. 이제는 누구도 집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외향에서 보이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카푸어인 것이다. 그들은 예전에 하우스푸어들이 집을 사기 위해서 돈을 안 쓰고 모으던 것을 대신하여, 자신들의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자동차에 그 시선을 돌린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이런 젊은 층을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월에 300만 원을 버는데 저축을 하지 않는 대신 BMW나 BENZ 혹은 아우디 등의 독 3사 자동차를 사버린다. 저축을 60년 동안 하는 대신 그들은 즐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멋지다. 나는 일견으로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을 사는 것에 있어서 자신의 철학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카푸어라고 일컫는 이들은 카푸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푸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카푸어들은 자동차라는 현물이 남아있다. 물론 어려운 경제상황을 이어갈 수 있다. 매달이면 돌아오는 리스료나 할부금을 갚아야 할 것이고, 종종 고장 나는 자동차 수리비도 생각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주유비, 세금, 보험료를 생각하면 돈 300만 원은 우습게 날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자존심이 남아있다. 자동차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리스비까지 결제하지 못해서 자동차를 뺏기는 카푸어는 생각하지 말자. 그것은 카푸어가 아니다. 오히려 바보 멍청이에 가깝다. 적어도 자신이 얼마를 감당할 수 있는지의 범위 내에서 결정을 하는 사람이 카푸어다.




하우스푸어는 너무나도 성실했다. 그들은 마치 성직자와 같았다. 죽어라고 노력해서 정말 죽을 무렵쯤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그 집 한 채는 자식들의 교육 자금에, 결혼 자금에 또 바탕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부모세대는 정말 남는 것이 하나 없었다.


난 그런 세대도 좋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세대도 부럽다. 단,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상태에서 약간 부족한 푸어라야 한다. 카푸어는 절대 카푸어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내게 없는 자동차가 없고, 세상을 향한 자신감도 있다.


어떤 현상을 한쪽으로 몰아보기에는 세상이 너무 다양해졌다. 그 다양성의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그래도 집부터 사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꼰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득 어느 날, 자동차들의 가격을 보다가 나도 자동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카푸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푸어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위에서 말했듯이, 그들에게 단지 삶의 여유가 조금 더 있는 선택을 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카푸어는 가난하지 않다. 가난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나 같은 꼰대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젊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부디, 진정한 푸어가 아닌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갈 수 있는 사회의 일원일 되도록 말이다.


문득, 나도 주제에 맞지도 않는 카푸어가 되고 싶은 밤이다.


커버이미지: 구글

Written by HARU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현대차를 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