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지우개처럼 내 손 안에서 놀고 있는’
어린 시절 미술시간이면,
손에서 떠나지 않던 물렁한 지우개가 있었다.
괜스레 멀쩡한 지우개를 만지고 싶어,
나는 빈 책상을 지우고 또 지워 부스러기를 모아댔다.
손끝으로 뭉치고, 펴고, 다듬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귓가의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눈앞은 탁해지며,
손 안에서 피어나는 그 작은 재미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친구가 곁눈질로 손을 내밀면,
마치 후한 인심처럼 지우개 한 조각을 툭 건네주고,
다시 책상을 문질렀다.
지금도 나는 그 재미를 쫓는다.
딱딱해진 마음을 이리저리 조물거려 물렁하게 만들고,
너무 흐물거려 흩어질 듯한 마음은 다시 살핀다.
글이라는 틀 안에서 마음을 굴리고, 펴고, 지우고, 모아두며,
그렇게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만들어낸다.
하얀 종이 위 검은 활자들,
마음을 만지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살짝 귀퉁이를 잘라 보여준다.
감정은 남아 있지 않은, 심심한 활자들의 놀이터를.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는 다시 손을 움직인다.
마음과 글을 동시에 만지며,
새로운 감각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