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남은, 지나간 사랑의 기록’
어떤 단어는 뜻보다 먼저 기억을 데려온다.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반응해 버리는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은 예고 없이 나타나
나를 전혀 다른 시간과 표정으로 되돌려놓는다.
말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대화를 이어가야 했고,
그래서 나는 말 하나하나를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건네준 단어와 표현들,
그 말이 쓰이던 상황과 공기까지 함께 배웠다.
사랑은 그때, 감정이라기보다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서툰 말들이었다.
발음도, 문장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처음 겪는 종류의 싱그러움이 있었다.
어린 날로 잠시 돌아간 것 같은
낯설고 가벼운 마음.
그 말들로 나눈 시간은
내 사전의 첫 의미가 되었다.
이후로 많은 단어를 알게 되었고
더 정확한 표현도 익혔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단어에 닿으려면
늘 그 첫 페이지를 지나게 된다.
특정한 발음,
어떤 지역의 이름,
아주 평범한 단어 하나가
여전히 나를 그때의 표정과 감정으로 데려간다.
그래서 가끔
어떤 말을 하다 말고
이유 없이 웃음이 나거나,
어딘가는 사무친다.
몸이 기억하는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관계는 매끈하지 않았고
마음이 다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언어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예쁘게 남아 있다.
그 말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며
지금의 나를 만든다.
사람은 희미해져도
말은 남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배운 언어는
끝내
나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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