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왜 태국이냐고 물으신다면》

완벽을 꿈꾸던 여행자, 태국에서 인생 수업을 받다

by 사막의 소금


“독립이란 이름의 낭만,
태국에서 바닥부터 다시 쓰다”


장녀로 태어난 나는,

늘 동생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야 했다.

부모의 따뜻한 기대 대신,

무언의 책임감을 먼저 배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내고 싶었고,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늘 공존했다.


여행에 대한 갈망도 그 경계에서 자랐다.

자유를 꿈꾸면서도,

낯선 곳에 홀로 던져질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까지.

여행은 내게 늘 감정의 복합체였다.

그래서 나에겐, 여행이 ‘도전’이자 ‘해방’이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가고 싶다는 듯이

만 19살이 되던 겨울, 나는 부모님에게 상의 없이

홋카이도 4박 5일 여행을 예약했다.

자유여행이 포함된 패키지여행이었다.

친한 동생과 여행을 계획하곤

출발하기 직전 밤에 부모님께 통보했다.

엄청난 일탈의 밤이었다.


그 여행은, 나의 독립을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가깝고도 익숙한 정서의 일본에서 하루의 자유 여행을 시도하고,

그다음엔 국내에서 혼자 떠나는 짧은 여정을 꿈꿨다.

늘 마음속 로망이었던 부산.

그리고 그 여정이 성공적이라면,

언젠가는 유럽 한 달 여행까지,

나는 마음속에 이미 작은 독립의 로드맵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어른이 되는 방법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처음으로 디딘 낯선 세계에서의 감정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여행책자와 블로그를 보며 그려본 길은 생각보다 멀고 추웠고,

미리 기록해 둔 타르트 맛집보다는

추위를 피해 들어간 편의점에서 먹은 어묵 국물이

더 나를 기쁘게 했다.


닳고 닳도록 본 지도는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눈보라와 추위는 내 걸음을 자꾸만 붙잡아서

내가 짜놓은 일정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독립‘의 첫발은,

아무리 합리화를 하고 부정해 보아도

뿌듯함과 만족감보다는 실망감과 좌절감을 주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에는 더 잘, 철저히 준비해야지!”


아마 여행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아니, 인생의 연륜이 조금이라도 쌓인 사람이라면

저 다부진 각오가 얼마나 허망한 외침인지,

젊은이의 패기에 불과한지 이해할 것이다.


이후의 모든 여행에서 나는 처절하게 깨달았고,

자주 부서졌다.

그럴수록 더 탄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애썼던 나는,

비로소 태국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잘못된 ’ 독립‘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내 운명이었을까,

더 잘 준비해서 제대로 여행하겠다는

다짐을 깨부숴주려는 듯이

태국 여행은 첫 시작부터 나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1편에서 나는 태국 여행의 첫 시작이

’ 이사 간 친구의 초대’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출국을 불과 며칠 앞두고,

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귀국해 버렸다.


입국심사카드 작성을 위해

그의 집 주소를 물었을 때였다.

내 메세지는 그저 읽히기만 했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싸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화버튼을 눌러보았다.


그런 나의 불안함은 제 몫이 아니라는 듯

그는 전화를 받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 지금 한국이야. “


그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제 내일 오후면 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숙소랑 경비, 일정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지인들에게 선물할 돈만 챙겨 오라는,

태국 물가면 한화 10만 원이면 충분하다던 친구는


당장 내일 출국해 자정에 도착하는 나에게

어디로 가야 하냐는 말에

“공항에 택시 많아~”라는

너무도 덤덤한 말만 던지고 사라졌다.


마치 해머로 머리를 맞고도

그게 통증인지 멍한 기분인지 알 수 없던 순간.

나는 통화가 끝났음에도 조금의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마치 부저가 울리듯,

망설일 틈도 없이 나는 독립이라는 낯선 경기에 뛰어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PC방으로, 본능처럼 달려가면서.


늘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하고 계획하였던

수많은 여행과는 달리,

첫 시작부터 미끄러져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했던

그래서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울며 일어나야 했던 여행.

그래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장소이자

의미가 된 태국.


이제, 그 아프면서도 웃겼던 이야기들을

하나 둘 풀어보려고 한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불어가며_


그리고 그 첫날밤, 공항에서 내가 남긴 눈물은

아직도 내 여행 노트 한 페이지를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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