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무계획의 용기, 무모함의 시작》

계획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 여행

by 사막의 소금
익숙한 불안을 지나,
낯선 자유 속으로.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그날,

마음속엔 기대보다 부담이 먼저 자리 잡았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막막함은

미지의 세계 앞에 선 기분처럼 나를 짓눌렀다.

친구와의 통화 이후,

세상에 혼자 던져진 듯한 감각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살 길을 찾아보겠다며 달려간 PC방에서,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정신없이 정보를 뒤졌다.

가장 시급한 건 숙소였다.

하필이면 친구의 권유에 따라

2주라는 긴 일정으로 떠나기로 했기에

어디에 얼마 동안 묵을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검색창을 몇 번이나 뒤적이며

방콕–파타야–방콕이라는 루트를 가까스로 짰고,

호텔 예약 사이트를 켜놓고 수영장이 있는지, 바다와 가까운지,

혹은 섬투어가 가능한지 따져가며 하나씩 클릭해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알아봐도 막막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보는 넘쳐났지만, 어느 것도 내 불안을 완전히 덮어주지는 못했다.


PC방에 갇힌 채 하루를 보냈고,

모든 예약을 끝낸 뒤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짐을 꾸리려니,

무엇을 넣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장기 여행을 대비해 미리 사둔 28인치 캐리어는

그 순간엔 너무도 커다랗고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밤을 꼬박 새웠다.

아니, 그날 이후 이틀 동안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몸은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받아낸 듯했고,

하필이면 대자연의 고통까지 겹쳐 왔다.

기대했던 여행은 그렇게,

출발 전부터 나를 10년은 늙게 만들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면 한 달,

아니 몇 개월 전부터 철저히 준비했다.

머릿속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어야 했고,

지하철 도착 시간은 분 단위로 계산됐으며,

갈아타는 여유 시간까지 시뮬레이션하곤 했다.


여행 전에 서점에 들러 그 나라 문화를 공부하고,

기초 회화를 외워보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 모든 준비가 나에게는 여행의 일부였고,

그렇게 준비해야만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에 호텔을 예약했고,

정보라고는 블로그에 적힌

유명 장소 몇 곳을 메모해 둔 게 전부였다.

심지어 유심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인터넷 없이 2주간의 태국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무모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무모함이,

그동안 내가 움켜쥐고 놓지 못했던

‘완벽한 준비’라는 이름의 통제에서

조금은 벗어날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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