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를 보았다.
펑펑 울었다.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면 울컥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제주에서 태어난 문학소녀 오애순과 일편단심 사랑꾼, 무쇠 양관식의 일생을 그린 이 드라마에는 그들의 인생만큼이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학~씨 아저씨’ 부상길과, 오애순의 남편이자 금·은·동명이의 아빠 양관식을 보며 나의 아빠가 참 많이 떠올랐다.
일하지 않는 아버지와 남편 대신 돈 벌러 나간 어머니 밑에서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했다. 군인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말뚝을 박았지만, 혈기왕성했던 아빠에게 군 생활은 답답했다. 결국 20대 중반에 전역한 뒤 여러 일을 하다가, 애순이와 관식이처럼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였던 엄마와 재회했고, 29살에 결혼해 짧은 신혼을 거쳐 나와 동생을 낳았다.
가난한 살림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아빠는, 자신의 무능한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그저 묵묵히 성실히 일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 젊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아무리 술을 마셔도 새벽같이 일터로 나갔다. 그렇게 돈 벌어다 주는 것이 최고인 남편, 아빠인 부상길이가 되어갔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직장을 잃은 아빠는 절망하지 않고, 손재주를 살려 수제 액자를 만들어 팔며 우리를 먹여 살렸다. 이후 알고 지내던 사장님을 통해 자신의 사업체도 만들었지만, 경영은 또 다른 일이었다. 일을 따내기 위해선 더 자주 술을 마셔야 했다.
자주 술을 마시는 아빠 때문에 엄마와의 다툼이 잦아졌고, 나는 그 싸움이 무서웠다. 그래서 어릴 적 아빠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점점 아빠가 밉고 싫어졌고, 엄마 대신 내가 아빠와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매일 그 중간에서 중재하느라 힘들어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빠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되도록 다 해주었다. 그게 아빠의 사랑법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답답했던 집을 벗어나듯, 나는 일본으로 떠났다. 처음 몇 년은 자유롭고 즐겁기만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나는 세상물정 모르던 20대에서,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온몸으로 깨달은 30대가 돼 있었고, 부모님은 어느새 키가 작아지고, 힘 빠진 내일모레 60대가 되어 있었다.
젊었기에 부딪히고 반항하던 시절과는 달리, 결혼 전까지 아빠와는 대체로 사이좋게 지냈다. 물론 ‘가족을 위해서라면 언제나 희생하는’ 아빠에게 금명이처럼 짜증을 부릴 때도 있었지만!
그리고 나는 결혼했다. 금명이의 결혼식에서 울던 양관식처럼, 아빠는 내 결혼식 날 울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진심이 담긴 사랑의 말을 전하며 또 울었다.
최근엔 동생이 임신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빠는 손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며, 평생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벌써 읽은 책이 허리 높이까지 쌓였다. 그런 아빠를 보며 참 많이 변했고, 따뜻해졌다는 걸 느낀다.
가족을 위해 자유롭게 그림 그리고 싶었던 것도, 상남자처럼 복싱을 해보고 싶었던 것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것도 모두 포기해야 했던 우리 아빠.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아빠는 결국 한 가정의 기둥이 되어 아내와 두 딸을 지켜줬다. 지금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새벽같이 일을 나선다. 가끔 본가에서 1박을 하면, 아침 식탁 위엔 받침은 틀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쪽지와 용돈이 놓여 있다.
아빠는 여전히 아빠다. 말로는 서툴고, 표현은 투박하지만, 삶으로 사랑을 보여준 사람.
이제는 내가 그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었기에,
늦었지만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