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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Nov 06. 2024

대중교통에서 빈자리를 찾는 이유

치한에게 당하다

일본에 오자마자 다양한 것들을 경험했다.

경험찬양론자가 되어 일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뭐든지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때론 겪고 싶지 않았던 일도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그중 하나다.


내가 다닌 일본어학교는 다카다노바바역에 있었다. 이 지역은 한국에서 꽤 알려진 와세다대학과 일본황실 자제들이 다닌다는 가쿠슈인대학교, 다양한 전문학교와 일본어 학교등 외국인과 학생들이 많았다. 또 지상철과 지하철이 2개나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오전반인 나는 매일 유명한 일본 러시아워에 전철을 타야 했고 항상 몸이 구겨질 대로 구겨져 손하나 까닥 못한 채 실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지옥철에 몸을 맡겼고 금방 내리기 때문에 최대한 문 앞 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문 앞은 나처럼 빨리 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비좁게 서있었다. 전철내부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사람 등에 기대어 갈 수밖에 없었다. 핸드폰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주변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가는지 궁금해 살짝 둘러봤다.


대각선 맞은편에 웬 남자가 화이트 셋업 정장을 입고 요즘 유행하는 일본 집사 다나카상 같은 헤어스타일과 안경을 끼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역시 일본은 개성의 나라! 라며 흥미롭게 생각하던 중 역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는 동시에 뒤에서 앞사람들을 힘껏 밀어냈다. 그때였다. 뒤에서 미는 틈을 타 누군가 내 엉덩이를 아플 정도로 아주 세게 움켜쥐었고 너무 놀라 내리자마자 주변을 돌아봤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 그 화이트맨! 그 사람은 역 출구로 향하며 나를 쳐다 보고는 웃으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라져 버렸다. 소름 끼치고 수치스러웠지만 무서워서 소리도 지를 수도 없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놀란 마음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지 못한 채 학교로 향 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 얼이 빠진 채 앉아있었고 학기 초 반 친구들과는 친해지지 않았던 시기라 누구에게 말도 할 수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조퇴를 하고 집까지 걸어갔다.(이때 이후 걷기를 좋아하게 됐다.)  다행히 걷다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누구에게도 내가 당한 일을 말할 수도 없어  답답하고 억울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 좋은 소식은 당연히 말 못 했고 속으로 혼자 삭힐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단순한 성격 탓인지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었다.


하지만 없던 습관이 생겼는데 이전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빈자리가 있어도 웬만하면 앉지 않았다. 그 일을 겪고나서부턴 대중교통을 탈 땐  빈자리에 앉거나 자리가 없을 땐 최대한 엉덩이를 가리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또 사람이 너무 많은 장소는 피하게 됐다.   


그 이후에 다행히 이런 불쾌한 일은 겪지 않았다. 가끔씩 이상한 변태들을 전철역에서 보긴 했지만.

지금은 농담처럼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똑같은 일을 겪는다고 하면 그때는 용기 내어 도움을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일본에서는 열차 내의 치한 문제로 각 열차회사마다 여성전용차량을 도입하고 있고 나와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쾌적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부디 이런 범죄가 근절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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