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Nov 04. 2024

공포의 저녁 메뉴 정하기

서울깍쟁이의 신혼일기(3)

결혼 생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식생활

연애 때는 잘 맞다고 생각했던 입맛이 결혼 후 큰 범위인 식생활로 옮겨지니 생각보다 잘 맞지 않는 우리였다.

연애 때야 일, 이주에 한번 만나는 데이트 때 맛집을 찾아다니며 입맛에 맞는 음식만 찾아다녔고, 각자의 일상의 식사 때 무엇을 먹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의 무시무시한 식습관을 알아버렸다.

그것은 바로 '보상심리 저녁식사'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그렇듯 회사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렇기에 퇴근 후 저녁시간은 일에 대한 보상을 다양한 형태로 가질 수 있는데 가장 쉬운 것은 바로 음식이다. 남편이 이에 해당하는데 물론 아주 잘 이해한다. 나 또한 한때 일에 치여 살 때 몇 달간은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하지만 자취 때나 그럴 수 있지 결혼 후에도 싱글 때처럼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지내려는 것이 문제였다.


결혼 1년 차 때 전업주부였던 나는 남편 퇴근 전 '요리'를 했다.

갖가지 반찬, 국, 밥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한국인의 밥상이 아닌 메인요리 한 가지와 밥 이렇게 말이다.

사실 반찬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SNS에 나오는 '메인요리'레시피를 참고하여 만들곤 했다.

남편은 좋은 남편의 정석처럼 매일 맛있게 남긴 없이 먹어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것이 즐거웠고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작용이 생겼는데 남편은 하루에 한 번 먹을 양만 만들어 먹는 식사를 하다 보니 대량으로 만들어놓는 반찬류나 국 등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내가(출퇴근 왕복 4시간이 걸려 저녁을 만들 기력이 남아있지 않아) 저녁을 만들지 못하자 남편은 퇴근길 '오늘 저녁 뭐 먹어~'라며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자주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생활비의 70~80% 식비로 지출하였고 몸무게는 결혼식 기준으로 각자 7~8kg가 쪘다.


더 이상 이렇게는 지낼 수 없다 판단하여 닭가슴살과 간편곤약볶음밥을 세일할 때 사두고 오늘부터 저녁은 이거다!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의외로 남편은 쉽게 동의했다. 하지만 그 동의는 겨우 반나절도 못 가서 철회되어 또다시 '오늘 저녁은 뭐 먹어~?'라며 철면피로 나왔다. 그런 남편에게 단호하게 나가면 이내 풀이 죽어 우울해지는 모습을 보고 결국 마음 약해지는 나는 항복하고 만다.


사실 맘먹고 의지를 불태운다면 남편에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변명을 해보자면 출퇴근이 힘들어 퇴근 후 그저 눕고 싶고 세상만사가 귀찮아지기 십상이다. 남편의 공격에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힘들고 나 또한 귀차니즘을 이기지 못해 배달앱을 켜게 된다. 거하게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시간도 없이 잠자리에 들면 위와 장이 밤새 힘들다며 불평하는 탓에 잠을 설친다. 아침이 되면 피곤에 허덕이다 겨우 출근을 한다. 어쩜 이렇게 미련한 루틴이란 말이더냐!


2년 차 결혼생활이 아직까지 순조롭고 행복한데 이렇게 가다간 싸움이 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오늘이야말로 꼭 가벼운 저녁을 먹으리라!라고 외치는 순간 울리는 공포의 메신저 도착 알림


여보 오늘 저녁 뭐 먹어?^O^




 



작가의 이전글 문화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