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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라로 Oct 27. 2024

스위스에 산다는건 어때요?

어디서나 여행으로 잠깐 머무는 것과 그곳에 실제로 정착해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에 잠시 들러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좋은 한국을 두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해외에서 고생하는 걸까"라고 농담을 건네곤 한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너는 여행으로 잠깐 와서 한국의 좋은 점만 보고 가니 그렇지. 막상 여기서 산다면 교육이며 생활방식의 치열함을 실감하게 될 거야”라며 되받는다. 여행과 사는 것 사이에 분명한 갭이 있다는 그들의 말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스위스 생활에 대해 크게 불만을 느낀 적은 없다. 물론 터무니없이 높은 물가 때문에 외식보다는 집에서 요리하는 날이 많고, 쇼핑도 가능하면 프랑스나 주변 유럽 국가를 방문할 때 몰아서 해결하긴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제외하면 이곳의 생활방식은 나와 꽤 잘 맞는 것 같다.

스위스 생활에서 특히 좋은 점은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글거리지 않아서 어디를 가든 고요함이 흐르고, 빈 벤치가 많아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언제든 편히 앉을 수 있다. 투명하고 맑은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머릿속에 쌓였던 근심이 하나둘 사라지고, 사방에 펼쳐진 산들 덕에 한국에서 바라보던 산의 풍경이 떠올라 왠지 모를 안도감마저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위스 하늘에 자주 펼쳐지는 큰 무지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내가 쓴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나는 작은 일상 속에서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 이 좋은 자연환경과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나에게는 천성적으로 잘 맞는다. 그래서 이곳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작게만 여겨진다.

물론 초기에는 힘든 점도 있었다. 특히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느껴지는 미묘한 차별의 기운이 처음에는 나를 힘들게 했다. 막 이사를 왔을 때, 건물 한가운데 사는 젊은 이웃 한 사람이 매번 나를 스치면서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것이 기억난다. 몇 번이고 나를 지나치며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일 때마다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불친절함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고, ‘왜 이럴까?’ 하는 마음에 서운함도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이웃들이 나에 대해 좋은 평판을 전해주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도 엘리베이터에서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어오곤 한다. 그래도 타지에 막 와서 마음이 불안정했던 때의 서운함은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기로 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 길게 본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불친절하게 구는 사람들은 결국 길게 보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 길게 보는 사람들이 결국엔 이긴다.


물론 이곳에서 감사하게도 참 좋은 이웃들도 만났다. 특히 옆집 할머니는 내가 스위스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의 안정을 준 분이다. 이사 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벨이 울려 나가 보니 옆집 할머니가 꽃다발을 들고 서 계셨다. “이곳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미소를 건네셨는데, 사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에서 들은 이 환영은 이사 후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주었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있고, 이유 없이 못되게 구는 사람도 만난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래도 세상은 아직 따뜻하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외에도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이 내 안부를 묻거나 어디에서 무얼 사면 좋은지 조언을 해줄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누가 스위스 사람들이 냉정하다고 했던가. 그들도 알고 보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퐁듀처럼, 속은 꽤나 따뜻한 사람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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