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카치 Jan 23. 2021

2.소소한 연희동 산책 하나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나 홀로 걷기

https://youtu.be/j646BDpA4ok

코로나 시대의 소소한 골목 산책 음성


광화문 문구점에서

파란색 지갑을 고를 때만 해도

이 작은 손지갑이 나를 이 거리로 이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포장지를 뜯자

단정해 보이는 카드가 한 장 나왔고

거기에는 공방 주소가 적혀있었다.

평소라면 바로 쓰레기통에 던졌을 테지만

그날은 달랐다.

주소가 연희동이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그곳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골목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공방은 내가 추측했던 그 자리,

사진관과 편의점 사잇길의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ㅅ쇼핑센터에서 궁동 근린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작은 공방, 작업실, 스튜디오, 카페, 갤러리 등을 지나게 된다.

우측으로 홍대 쪽에서 이사 온 빵집도 보인다.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공간들도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바로 그 세 갈래길이 나타난다.


사진관과 편의점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이곳에 왔던 처음 그날처럼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느낌이랄까.

여전히 이곳은 매끈한 세단보다 낡은 손수레가 어울리는 거리였다.


때마침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깔리는 새소리가 나의 흥을 부추겼다.

주변의 잘 생긴 거목들이 새를 불러들인 모양이다.

남의 집 마당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에게 난생처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졌다.



소소한 이야기 1>


어린 시절, 강소천 님의 아동소설 ‘꿈을 찍는 사진관’을 무척 좋아했었다.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이미 제목만으로도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던 것이다.

볕이 잘 드는 마룻바닥에 누우면

사진관의 외관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가상현실이나 시간 여행 혹은 기억과 관련된 온갖 영상과 픽션을

접하게 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이 이야기의 신비함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곳은 남산에서 우연히 들렀던 사진관처럼,

환상적인 외경을 뽐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거리에서

오랜 기억 속 ‘꿈을 찍는 사진관’을 떠올렸다.

(뽀샵 미인이 아니라) 세월을 자연스럽게 품은,

매력적인 버전의 나를

사진 속에 넣어줄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이야기 2>


서울에는 아름다운 뷰를 가진 편의점이 몇 있다.

녹사평역이나 진관동에 위치한

편의점의 옥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자면,

이런 풍경을 혼자 즐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나는

이렇다 할 뷰나 볼거리가 없는,

이곳 사진관 옆 편의점이 어쩐지 더 마음에 든다.


사실 이곳은 편의점이 들어오기에

좀 뜬금없는 자리다.

과거, 기껏해야

전방(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작은 가게) 정도가 있었을 법한 외진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을 때까지 부디

오래오래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슬쩍 매출 걱정도 해본다.

나는 이곳이 여행자로서

어쩌다 기웃거리는 장소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생활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연희동 주변에서>


정신줄을 놓고 기웃거렸을 뿐인데 어느 순간,

피곤해지면서 허기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커피가 고프다.

다행히 서울은 커피에 푹 빠져있는 도시여서

커피 마실 곳은 늘 가까이에 있다.

보통의 경우, 산책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카페를 정하는데, 간혹 미리 사진을 찍어두거나

이름을 적어놓기도 한다.

지나친 장소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연희동 첫날이므로

이 지역 카페에 대해 사소한 것들을 적어보면...


연희동에는 주택을 개조한 카페가 유독 많은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동네에는 원래 대저택이 많았으니 말이다.


또 전형적인, 연희동스러운 건물에 자리 잡은

카페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 ‘연희동스럽다’는 것은 클래식과 모던함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것을 의미한다.

컬러는 밝고 느낌은 정갈하다.


정원이나 테라스나 루프탑을 가지고 있는

카페도 많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지 않은  날,

나는 야외에서 차를 마시기 위해

연희동을 즐겨 찾는다.


갤러리나 복합 문화 공간 느낌의 카페도 있다.

요즘 한참 잘 나가고 있는,

애완동물 동반 카페 ㅈ도 이런 맥락의 공간이다.


ㅈ카페 옆 골목 언덕 위에 위치한 o카페는

앞서 언급한 특성들을 두루 가지고 있다.

주택을 개조했으며

갤러리를 포함한 복합 문화 공간이며

정원과 테라스와 루프탑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테라스에 서면 연희동 전경이 자연스럽게 내려다 보여서 힘들게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된다.


오늘은 이곳에서 핫 커피를 마시며

작은 여행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전 01화 1.소소한 골목 산책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