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해도 괜찮아요. 사람이라서 그래요.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것들.

by 보뚜

을 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끔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 가다 보면 어느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가 서너 살 무렵 당시 우리 집 맞은편에는 밭이 있었고 밭고랑 끝을 따라 걷다보면 도토리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산이 나왔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가끔 내 손을 붙들고 그 산 주변을 걷곤 하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땅바닥을 쳐다보며 걷다가 떨어진 도토리가 눈에 띠기라도 하면 얼른 그 도토리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곤 했다.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여느 아버지가 그러하듯 모르시는 것도 없고 못하시는 것도 없는 척척박사, 슈퍼맨이셨다.


집에 돌아와 내가 주워온 도토리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놓으면 아버지께서는 도토리의 머리 부분에 성냥개비를 꽂아 팽이를 만들어 주셨다. 나는 연실 "우와" 하는 소리를 내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토리 팽이는 몇 번 돌리기만 해도 성냥개비가 헐거워져 금세 빠져버린다는 것만 제외하면 당시 세 살배기 어린애가 가지고 놀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장난감이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도토리 팽이에 성냥개비가 빠져서 울먹울먹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버지는 언제 나갔다 오셨는지 내 앞에 도토리를 한 움큼 꺼내놓으시며 나를 달래주시곤 했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지만, 내 어릴 적 기억 속 나의 아버지는 한 없이 자상하 나의 히어로셨다.


나에게 아버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셨다.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며 그늘을 내어주시고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큰 나무.......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나의 아버지는 1994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의 기억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 견고히 각인되어 있다.


자율 학습시간에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호출로 교무실 뛰어 갔던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생님 앞에 쭈뼛거리고 서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해 주시지도 않고 무작정 집으로 가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당시 나는 덜컥 겁을 집어 먹었다.


"다른 데로 갈 생각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 알았지?"

"무슨 일인데요?"

"선생님도 몰라. 택시 타고 가. 택시비 있냐?"


선생님의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아서 집에 무슨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데 너무 경황이 없어서 눈물조차 나지를 않았다. 장례 마지막 날 하관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막혀있던 눈물샘이 터지기라도 한듯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가 12월이었는데, 예년보다 상당히 추운 날씨에 묫자리를 파러 온 일꾼들이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연실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성격이 되게 고약한 양반이었나 보네. 날씨가 이렇게 추운 걸 보니."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고작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함부로 평가하다니.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아버지의 공허함이 느껴졌다. 며칠 전까지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아버지께서 이젠 영원히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슬프고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 마음은 거의 3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내 가슴 한편에 멍울로 자리 잡아 있다.


'아버지, 잘 계시나요?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라는 걸 한다. 신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싫어도 후회라는 걸 하게 된다. 하지만 괜찮다. 사람이라서 그렇다. 후회를 할 수 있어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가 아버지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닫고 아버지를 잊지않고 지금까지도 계속 그리워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후회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반성하며 지금과는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산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영원한 나의 슈퍼맨이신...... 아버지.'


세상에 후회가 없었다면, 가슴 절절한 깨달음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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