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육아 기질육아_강점육아
혹자는 이렇게 관찰, 애착, 훈육만 해서 아이들이 세상에 잘 살아 남느냐고 물을 수 있다. 이때 질문의 내제된 조건은 ‘공부를 잘해야 살아남지.’라는 것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님 말고!
그러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풉! 진짜 공부 좀 잘 한다는 사람의 조건을 제대로 잘 모르시는 군!’ 이제는 영어 좀하고, 수학 좀 잘 한다? 서울대갔다?가 성공의 세대는 아니다.
이미 내 주변만 봐도, 나보다 공부 잘했지만, 서울대갔지만, 또는 서울에 대학을 들어갔지만, 그냥 저냥으로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차라리 뒤늦게 자기의 뜻을 찾고 하고 싶은 바가 정확하여 대학교에 가고, 대학원 간 친구들이 훨씬 더 신나고 생산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생산적이란 단어를 쓴 것도 공부=돈이라는 사고하시는 분들을 위한 단어이다.)
심지어 내 주변에 있는 300억대 부자는 대학교가 돈 번 일과 매우 무관하고, 현재 강의를 들으려면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 수 알려주지만, 정말 인성이 좋으셔서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도와주려고 하시는 분이다. 과연 고등학교에 공부 잘했는가? 아니라고 하셨다.
어째든 말고싶은 바는 이러하다. 지능도 신체의 일부이다. 자연스럽게 성장을 하면 지능이 나쁠 리가 없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성공하는 아이의 마지막 한 끗은 ‘그릿, 자기효능감, 회복탄력성’에 달려있다. 이는 내가 짧게 요약할 수 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말해오던 ‘자존감이 높은 아이’이다.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 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와도 뚫고 지나가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공을 위해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시키는 발달촉진법이 무엇일까?
신속하고, 정확하게 관찰한 바로 반응하면서 놀아준다.
그렇다. 앞선 3가지가 되어 있지 않다면, 발달촉진이 제대로 될 일이 없고, 내 아이에게 자존감은 바라지 말아야 한다.
이유는 이러하다. 요즘 성인영어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팔더라. 나도 몇몇개 알아본 적이 있다. 그 때 보니, 단계가 엄청 많이 나누어져 있었다. A1~A4부터 시작해서 Z1~Z4단계까지 있었다. 나는 A1의 단계인데, F3의 단계의 문제집을 풀으라하면, 풀 수 있을까? 무려 18단계를 건너 뛰고서는 풀 수 없을 것이다. 아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언어치료사가 되었을 때, 초반의 일이다. 아동은 2세인데 부모는 의사-약사였다. 아동에게 바코드, 트레픽 콘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아이가 ‘이거 머야?’라고 물었기 때문이라 했다.
나의 답답함은 이러한 것이다. 아동의 발달상 모든 것에 ‘이건 머야?’라는 질문을 하는 시기가 있다. 정말 궁금해서 또는 외울 수 있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묻는 것이 재미있군’이라는 것은 단, 하루만 ‘관찰’해도 알 수 있다. 그럼 요즘 묻는 것이 재미있는 시기이니, 내 아이의 발달에 맞는 알만한 쉬운 단어들은 촉진하고, 아닌 질문은 대충 얼버무려 지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절한 반응인 것이다.
스스로 취사선택하는 능력이 없는 아동들에게 외부에서 취사선택해주어야 하는 것은 정보의 질이다. 그런데 아동이 묻는다고 바코드라고 알려주고 배워라고 하면, 18금의 영화도 같이 못 볼 이유가 무엇인가?
즉, 적당한 때에 적당한 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발달촉진법이다. 그러니, 아동을 잘 관찰해서 가장 정확한 반응이 무엇인지 잘 고려하기 바란다. 이 때 정확함은 2가지를 고려하면 된다. 내 아이의 성향 + 발달서를 고려한 적절한 난이도의 답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주의집중 시켜서 알려주면 된다.
이렇게 성장한 아동은 이렇게 느낄 것이다. ‘아~ 세상에서 내가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 이거 할만하다. 그리고 모르는 건 하다 보니깐 되더라.’ 이런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하나씩 해나가는 아이라고 생각해보자. 전교1등도 될 수 있지만, 혹 전교 1등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300억 자산가는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건강한 모습이다.
육아의 원칙대로만 한다면, 사실 ‘육아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자연’스러운 육아가 바로 육아의 원칙이다. 그러나, 아이는 낳는다고 저절로 크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자연스러움’을 발견하고, 이것을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게 돕고, 본연의 모습이 ‘사회’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육아의 원칙이다.
-모든 가정이 화목해 질 때까지
릴라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