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난쟁이가 백설공주를 사랑한 이유
쇼핑 메이트가 있으신가요?
전 동생과 쇼핑을 자주 다녔어요. 서로에게 아주 솔직하거든요. 예쁘면 예쁘다고 하지만 안 어울리면 가차 없습니다. 너무 안 어울리는데도 그 옷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더 적나라한 말로 포기하게 만들어주지요. 그래서 핏줄이 좋은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요즘엔 시간이 없어 잘 가지 못하지만 “자라”를 좋아해요. 거북이 친구 말고 망고 친구 “자라” 다들 아시지요? 자라 매장에 입장과 동시에 따로 길을 떠납니다. 각자 옷들을 살피고 골라서 탈의실에서 만나지요. 신기하게도 타이밍이 비슷해요.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어김없이 동생에게 전화가 옵니다.
“언니, 어디야?”
“탈의실”
옷을 입고 나오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체크하고 누구보다 솔직한 심사관의 의견을 듣습니다.
“언니야, 이 옷 어때? “
“집에 열 벌 있는 옷 아니야? 다음 거 입어 봐." (실제로 동생은 같아 보이는 옷 모으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만큼 비슷한 옷들을 많이 갖고 있어요. 조금씩 다른 똑같아 보이는 옷들을 사요.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어서 그런 스타일의 옷을 보면 손이 먼저 나가거든요 - 이것도 옛날이야기지만요. p.s 사랑해 크리스탈 )
“아니야~ 그건 짧은 거고 이건 길잖아. 레이스도 다른 스타일이란 말이야. 근데 팔뚝이 좀 두꺼워 보이지 않나? “
“팔뚝은 괜찮은데 니 옷장에 열 벌있는 옷들이랑 너무 비슷해. 일단 킵하고 다음 거 입어봐. 나는 어때? “
“이거 언제 입을 건데? 파티 갈 거야?”
“나중에 여행 가서 입으면 되지 않을까? “
“여행 언제 가는데? 이런 원피스 말고 평소에 입을 수 있는 걸 사!”
“오케이, 그럼 다음 거 입고 다시 만나자.”
(서로 상처받지 않습니다. 두리뭉실한 의견 말고 똑 부러지는 솔직한 쇼핑메이트는 너무나도 소중하니까요.)
겹치는 취향이 있기에 가끔 같은 옷을 들고 만나기도 하고 고민하다 두고 왔는데 한 명이 갖고 왔으면 잘됐다며 서로 바꿔 입어보기도 합니다. 자라에서 쇼핑을 해보셨다면 잘 아시겠지만 평소에 입지 못할 옷들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저 점프슈트는 키가 175는 되어야 바지가 끌리지 않을 것 같고, 저 원피스는 도대체 가슴이 어디까지 파여있는 건지, 다리는 어디까지 트여있는 건지. 저 신발은 신고 걸을 수는 있는지. (키가 작아 슬픈 짐승은 예쁜 옷이 길 때 조금 슬프거든요. 굽 있는 신발은 즐겨 신지 않고요.)
많은 옷들 사이에서 입어보고 싶은 옷들을 찾아 이고 지고 탈의실로 향하다 보면 마주치는 손님 모두가 다른 옷을 들고 있어 신기하기까지 하답니다.
동생이 또 뭐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안고 새로운 원피스를 입고 커튼을 걷었습니다.
“꺄! 언니야, 너~무 예쁘다! 완전 백설공준데?” (너 왜 이래… 적응 안 되게.)
“정말? 근데 평소에 입을 수 있을까?”
“언니야는 입을 수 있다. ㅋㅋ 그리고 일단 이건 사야 된다. 너무 잘 어울려.”
까다로운 심사관의 기준이 무엇인지 좀 헷갈리지만 어쨌든 통과입니다. 소매가 조금 과한가 싶긴 하지만 뭐 어때요?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앞에서 패션쇼를 했습니다. 역시나 이 옷이 제일 반응이 좋더? 군요.
“이든아, 엄마 어때? 예뻐? 크리스탈이모는 백설공주 같다고 하던데? ”
“응! 엄마 예뻐. “
“자기야, 어때? 너무 튀나?"
“예 쁘 네, 자기 마음에 들면 되지 뭐.” (분명히 남편 스타일의 옷은 아닙니다. 그래도 뭐 예쁘다고 했으니까요. 듣고 싶은 대로 듣는 편입니다.)
백설공주 원피스라는 별명이 생긴 옷은 아무래도 튀어서 한 해에 한두 번밖에 입지 못하지만 입으면 괜히 일곱 난쟁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고 인기가 많아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백설공주 원피스를 입을 때는 이것만 기억하세요-
편안한 조리와 함께 소박한 공주님으로. 투박한 느낌의 샌들도 괜찮아요 - 신발까지 공주면 곤란합니다
사과는 먹지 마세요 -구해줄 왕자님이 없으니까요 흑흑
핼러윈 파티에 갈 게 아니라면 머리띠 금지
화려한 액세서리는 집에 두고 가실게요 - 포인트는 원피스 하나로 충분합니다.
원피스 덕분인지 일곱 난쟁이 안 부러운 두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여보, 두 남자 맞지? 한 남자 아니... 지?...)
고마워, 백설공주 원피스야. 내년에도 잘 부탁해.
*패션과 전공이 무관한 글쓴이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과 이야기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패션은 기세(氣勢)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중도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당당하게 입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