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시(民詩)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민체를 생각하며
황현민
민체를 생각하면 민요가 떠올랐다. 그리곤 민시를 상상했다. 민시는 왜 없지? 민시를 검색하면, 국민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주의와 방침이라는 해설이 나온다. 나쁘진 않다. 아무튼 民詩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민체와 민중체의 차이는 또 뭘까? 민요와 민중가요, 그리고 대중가요의 차이는 또 뭘까?) 아무튼 민시는 없지만 민중시는 있지 않은가? 현재로선 민시는 민중시가 가장 유력하다. (혹 사설시조를 민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민중시에 가깝다고 본다. 지은이가 평민이라지만 글씨를 알고 시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일부 지식인이었을 테니까) (혹자는 민요가 민시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민요시라는 낱말은 있었지만 민시라는 낱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시라는 장르는 꽤 고상한 분야다. 민시가 없는 것을 보면 더 그러하다. 노래는 누구나 다 부를 수 있고 글씨도 누구나 다 쓸 수 있다. 그러면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있는 것일 뿐이다. 시는 왜 누구나 쓰지 않는 것일까? 과연 아무나 쓰지 못해서 일까? 옛날에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오늘날은 누구나 다 글자를 읽고 글씨를 쓸 수 있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누구나 동시 하나쯤은 짓지 않았던가? 왜 시를 어렵게 생각하고 고상하게 만들었던가? 고로, 민시가 필요하다. 민시의 존재 가치가 오히려 높을 수 있겠다. 누구나 민시를 지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민시는 민중시와도 다르다. 다르지만 민중시가 그나마 있어서 민시에 가까워서 (민시라고도 우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민중시는 낯설기보다는 일상적이다. 시어도 쉬운 일상어들로 시를 짓는다는 점이 민시라고 할 수 있지만, 민중시도 소수의 사람들(문인들)이 지었다. 일반 국민들 남녀노소 누구나가 짓는 시가 아니기 때문에 민시라고 단정지을 순 없겠다. 앞으로 민시(民詩)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시의 작품성을 떠나서 누구나 자유롭게 시를 짓고 시낭송을 할수 있는 민시가 여기저기 생겨났으면 참 좋겠다.
민체와 민중체를 따져보자. 민체가 민중체를 포함한다. 민중체는 최근에 생겨났으며, 민중체는 쇠귀 신영복체를 주로 의미한다. 일명 어깨동무체라고 부른다. 민중체의 존재는 실제 글씨를 보면 누구나 손뼉을 치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민체는 민중의 모습을 닮았다. 오늘날 민중은 서민들이며, 광범위하게는 국민들이다. 글씨를 보면 산과 들, 강과 나무, 새와 달, 사람과 집 등을 보다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신영복체는 글씨체 자체가 매우 낮고 낮아서 욕심없고 순박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서민들을 많이 닮았다. 아무튼 민중체와 민체는 매우 가깝다. 또한 민체는 누구나 쓸 수 있으며 한글 창제 이래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명백을 이어가고 있으며, 과거보다 현재 더 많은 빛을 발하고 있다. 한글로 쓴 민체는 정말 아름답다. 이미 글씨에서는 진선미가 판가름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체가 궁체보다 훨 다양하고 훨 자연스럽고 훨 아름답고 훨 건강하고 훨 창조적이고 훨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팩트다.
이에, 민시(民詩)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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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대신 직접 손글씨로(민체로) 누구나 자유자재로 시 한 편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더불어 민요의 부활도 곁들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