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인동네 폐간 선언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도 오고 해서 살짝 구시렁거리고자 한다. 기분 나쁘실 분들은 읽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 나라 문학의 발전과 특히 시의 발전과 시인이라는 존재를 위하여 한번쯤 읽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존칭 아닌 평칭으로 이야기하는 점에 대해 우선 양해를 구합니다.
이 나라 문학 관련한 기관, 문예지나 문학상 등에 관한 문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부지원사업, 친일, 성폭력, 지면 권력, 심사제도, 작품성 문제, 유유상종 등등 다소의 오류들이 많았다. 그러한 오류에 대해선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라서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시인들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시인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시인이니까...
나는 등단 전까지 시인을 우러렀다.
세상 모든 인연을 끊고 시인이 되어서 시나 지으면서 살고자 했다. 쓸쓸하면 좋은 시인들 가끔 만나면서 시나 지으면서 시 이야기나 하면서 살고자 했다. 그것이 나의 오류였음을 등단 후 2년쯤 지나고서야 인지했다.
특히, 고은 시인 사건은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고 극소수 시인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동안 우울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시인들을 증오까지 했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주변인들이나 모두가 싫었다. (그러한 사실을 직접 드러낸 피해자의 용기에는 감사하고 존경한다.) 결국 시인들도 똑같구나, 인지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시인들과 어울리고 좋은 시인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는데... 실망이 앞섰고 괜한 오지랖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인은 홀로 쓸쓸한 존재 아닌가? 무엇보다 시인은 홀로 쓸쓸하게 자기 시를 잘 지어야 할 뿐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떠오른다.
내 첫 시집을 (종이 시집을) 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투고를 해도 선택되지 못했다. 내가 시를 썩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쓰는 편도 아니지만 나는 내 시를 지을 뿐이다. 내 시를 읽고 이해하고 즐거워할 젊은 시인들도 분명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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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히 젊은) 시인들이 시를 제대로 꼼꼼히 읽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것이 내겐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그것이 내가 등단한 문예지와 인연을 끊게 된 동기였다. 나는 시집이나 문예지를 봐도 시만 읽지 다른 것을 좀체 읽지 않았다. 내가 아는 시인의 출간 시집에 대한 해설이라 읽었는데... 당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시발이었다. 좋은 시집을 제대로 꼼꼼히 읽지 않고 작품 해설을 해서 좋은 시집을 하찮은 시집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 신간 시집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서술이라고 느꼈다. 그 문예지와의 인연을 바로 끊었다. 시를 제대로 꼼꼼히 읽을 줄 모르는 시인들이 만드는 문예지를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런 시인을 시인으로 인정할 수도 없었다.
나의 성격상 직업상의 오지랖일 수도 있다. 또한, 살아오면서 나는 한 무리 중에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 무리가 다 싫게 느껴졌다. 아무리 절친이 그 무리에 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절친까지 멀리하는 경향이 심했었다. 결국 난 혼자가 되어 버렸고 다행히 아주 가끔씩 한두 시인과 안부나 주고받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내 첫 시집이 (종이 시집이) 나온다면 직접 감사의 사인본을 들고 가서 내 첫 시집을 전해주고 싶은 시인들은 많다.
계속 이어 가겠다. 요즘 젊은 시들은 여전히 기교가 넘쳐난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진심 없이 머리로 쓰는 시들이 많아 보인다. 개성은 사라지고 비슷비슷한 시들이 많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나 또한 요즘 시를 읽을 수 없다. 아니 읽기가 어렵다. 젊은 시인들이 기성 시인들의 시를 읽지 않는 것처럼 이미 젊은 시인들의 시는 내게 배제되었다. 진심과 영혼이 사라진 시를 나는 시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시풍이 30년째 똑같은 시들이 여전히 생산되고 지면에 상당수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시인의 이름을 안 보고도 그 시를 읽고 이 시는 누구의 시라고 맞출 수가 없다. 비슷비슷한 시들이 너무나도 넘쳐난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마치 비슷비슷하지 않으면 시가 아닌 듯 인지하고 일부러 그렇게 비슷비슷한 시풍의 시를 쓰는 듯싶다고까지 느껴졌다. 그러한 시풍의 시가 좋다고 하면서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시인들도 많은 듯 느껴졌다. 그러한 비슷비슷한 시풍을 선호하는 심사위원분들이나 출판사나 문예지들도 문제일 듯도 싶다.
젊은 시인들에게 (이 글이 무척이나 불쾌하신 분들께) 시집 한 권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로 백석의 시집이다. 백석의 시집을 아직 읽지 않은 시인이라면 지금이라도 읽어보시길 권장한다.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를 읽으면서 백석이라는 시인을 내내 상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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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전,
시 한 편을 짓고 나서 (등단을 위해서) 나 또한 기교를 가감하게 부렸다. 기교는 무척이나 쉬운 일이라서 뚝딱 만들었다. '사서에게', '걸레향'은 퇴고 시 기교를 더해서 완성시킨 작품이다. 나의 상상력이라면 기교는 너무나도 쉬운 작업이었다. 등단 후 나는 그러한 기교를 버렸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시상은 진심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지만, 머리로 쓴 시 같아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진심과 경험이 없다면 시 한 편을 시작할 수 없다. 시는 진심과 경험을 바탕으로 시상이 온다. 거기에 상상력으로 완성해 나간다. 자연스러운 기교도 (몸이 알아서 저절로 부리는 것은) 나쁘지는 않다. 기교도 (시적 기술도 필요하다) 자연스러워야지 억지로 기교를 부리면 위험하다. 그것이 몸에 밴다면 얼마나 위태롭겠는가. 시는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써야 하는 것인데 안 좋은 습관이 몸에 밴다면 시를 짓는데 큰 방해가 될 테니까...
지면에 주로 노출되는 시인들은 젊은 시인 들일 게다. (물론 유명 시인들도 많다.) 앞으로 오류를 개선하고 바꿀 수 있는 시인들은 젊은 시인들이다. 시운동의 주체는 젊은 시인들이다. 주어진 기회, 지면에 좋은 시를 많이 실어 주길 희망한다. 개성 넘치고 작품성 높은 좋은 시들을 많이 지면에 게재해 주었으면 좋겠다. 자신보다는 사회를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이 생겨나도록 시운동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 시집만 홍보하지 말고 더불어 타 시인의 진짜 좋은 시집을 더 많이 홍보하여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더 많이 좋은 시를 접하고 더 많은 시를 좋아할 수 있도록 힘써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나라의 시가 살아나고 시인의 존재를 회복할 수 있을 듯싶다. 젊은 시인들이 나서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좋은 풍토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들이 다시 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물론 아침에 시를 짓고 저녁에 불태우는 젊은 시인들이 있다면 예외다. 지면에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젊은 시인들에게 해당한다. 독자들이 시를 만나는 곳이 바로 (온오프라인) 지면이니까... 온오프라인 지면에 좋은 시들이 많이 나와서 독자들이 더 많이 시를 좋아할 수 있도록 선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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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재산을 다 털어서 문예지를 만드는 시인들이 있다. 나는 그분들을 진정 존경하고 그분들께 감사한다. 시인동네가 폐간된다는 것은 전 재산을 걸고 살아온 한 시인의 삶이 무너지는 것이리라. 전 재산을 걸지 않은 시인들은 그것을 모르리라. 젊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한 측면만 바라보지 말고 두루두루 전체를 바라보는 젊은 시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덧붙인다. 젊은 시인들이 (개선에 만 그치지 말고, 개인 시집 홍보에만 그치지 말고) 시운동에 적극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이 땅의 젊은 시인들을 응원한다.
비가 또 많이 내린다. 오늘의 궁시렁을 마칩니다. 불쾌하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