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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04. 2019

남편과 단둘이 산다는 건

어느덧 베스트 프렌드가 된 남편

결혼을 하고 남편과 단둘이 살게 된 지 어느덧 10년째...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물론 결혼 전에도 남편이 친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간혹 지인들이 '둘이 나이가 같으니 친구 같겠다'라얘기하곤 했지만, 꼭 나이가 같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남편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다.

내일이면 아니 한 시간 후면 변할 내 생각을 서슴없이 얘기할 수 있고 나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얘기, 심지어 나의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불만도 가감 없이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몇 년 전 사무실에서 남편과 짧게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대개 사적인 전화는 밖에 나가서 하는데 그날은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 사무실에 있었고, 짧게 끝대화라서 그랬던 것 같다.

30초가량의 짧은 통화가 끝난 후에 동료가 나에게 물었다.


동료 : 결혼한 지 얼마나 됐죠?(이 동료와는 부서가 달라 서로에 대해 잘 몰랐고, 옆자리에서 일한 지는 1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 : 7년쯤 됐어요.

동료 : 정말요? 꽤 됐네. 그런데 어쩜 신혼 같아요?"

나 : 글쎄요, 신혼 같았나요?

동료 : 애가 없어서 결혼한 지 꽤 돼도 아직도 신혼인가 보네요. 남편이랑 사이가 좋은가 봐.

나 : 애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고, 언젠가부터 남편은 제일 친한 친구예요.

동료 : 남편이 어떻게 친구예요?(여기까지 듣고 난 '남편은 이성적으로 매력적인 남자여야 하는데 내가 친구라고 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의 말은) 남편은 웬수지.

나 : 네???


그 동료는 나보다 2살 많았고,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1명 있었다.

그 뒤로 가끔 그 동료는 사무실에서 남편과 전화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간혹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이 남편과 둘이 무슨 얘기를 하냐고 물어보곤 한다.

나의 대답은 늘 똑같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 며칠 지나면 기억도 안 나는 사소한 얘기를 한다고...

내가 더 많이 얘기하는 편이긴 하지만, 남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는 나에게 가장 많은 얘기를 하는 것 같다.


한 번은 정말 좋아하고 친한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언니, 난 남편이랑 애 얘기 아니면 할 얘기가 없는데, 언니는 형부랑 무슨 얘기를 해?"

"그냥 이런저런 얘기하지"

그 동생은 수긍을 못하는 표정이길래, 웃으면서 한마디 더 해줬다.

"니 욕한다. 그럼 시간 가는 줄 몰라"

물론 이 말이 100% 농담이라는 건 나도 알고, 그 동생도 안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언니, 우리 부부는 둘이서 할 얘기가 없어서 OO이 얘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OO이 얘기만 하다 보니 둘이 할 얘기가 없는 건지 모르겠어"

"아마 후자겠지? 나중에 OO이 다 크고 나면 연애 때처럼 둘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게 될걸~"

"그렇겠지? 아무튼 언니랑 형부, 너무 부럽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은 나에게 부럽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여유시간이 많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부럽다고,

마음껏 여행할 수 있어서 부럽다고,

주말에 늦잠을 실컷 잘 수 있어서 부럽다고...

난 그냥 미소를 짓거나, 니들도 애가 더 크고 나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하곤 했다.


내가 부럽다는 그 말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육아로 인해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한 시기라서 순간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점검해본다.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부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

현재까지는 단 한 번도, 순간적으로도 그런 해본 적이 없다. 아마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임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난 남편과 사소한 얘기를 매일 하고, 자주 시간을 맞춰 여행을 한다.

주말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눈이 떠질 때까지 늦잠을 잔다. 

그리고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함께 혹은 번갈아 가며 요리를 하기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도 한다.

때론 서로에게 이벤트를 해주기도 한다. 정말 감동하기도 하고, 감동한 척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우리의 특별한 저녁식사, 평범한 어느날의 식사, 그리고 남편 차에 몰래 놔 둔 비타민C 이벤트~^^

남편은 나에게 참 특별한 존재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만만한(^^) 사람이면서 한편으론 세상에서 제일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다.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또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나는 남편과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또 원초적인 모습과 매력적인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또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살 것이다.

때론 격렬하게 때론 사소하게 싸우고 또 화해하면서 그렇게 따뜻하게 살아갈 날이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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