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작가가 만들어낸 옴니버스 희곡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라는 책의 ‘당신이 잃어버린 것’ 편을 천천히 함께 읽었다. 잃어버린 것이라는 내용에 맞게 재미있다가도 '잃어버리는 일'들이 극에서 발생할 때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고 할 때가 많았던 희곡들이었다. 모든 잃어버린 것이 결국 사람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가장 큰 상실의 아픔을 느끼는 것은 결국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각각 그 이별의 무게를 가슴에 안고 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주인공들의 귀에 한겨울에 매미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내 귀에도 매미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 편 중에서도 ‘하이웨이’에서는 단체로 스키장에 갔다가 어떤 사고로 모두 죽고 단 한 명 살아남은 소녀와 스키장에 가서 죽은 아들의 엄마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고장이 나고, 다시 또 고치고 그렇게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마음이 되어 글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상실감과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상처 같은 것들. 그런데, 어느 순간 유일한 생존자인 소녀의 말에 자꾸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소녀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 후 살아남은 소녀가 느끼는 마음과, 쏟아지는 그 시선들이 충분히 공감이 갔다. 그때부터는 맹랑해 보였던 소녀가 지나온 삶과 그 삶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희곡을 함께 읽는 사람들과 옴니버스식으로 만들어진 이 책에서 '당신이 잃어버린 것' 전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인사를 하고 줌에서 나왔다. 그날은 '싱어게인 3회 차’의 날이었다. 10시 30분에 시작한 싱어게인은 무려 2시간을 방송했다. 시작 부분에 귀여운 얼굴의 여자분을 보여주었다. 그분의 얼굴을 보고 모두 술렁인다. 노래를 잘하는 유명한 여자분인가 하며 찾아보는데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여자분이 다시 편집되어 나왔다. 그녀는 몇 년 전 활동 2년 차에 교통사고로 두 명이 유명을 달리한 레이디스코드의 멤버 ‘소정’이었다. 그녀는 "사고 후 활동을 했는데 빈자리가 너무 컸다. 무대에서 '웃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했다. 기쁨과 행복을 드리려 했는데 나를 볼 때 '재들은 안타까운 애들'이라는 반응이 있어 웃으면 안 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눈꺼풀 아래도 임재범의 ‘비상’을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노래가 끝나고 난 뒤에도 마이크를 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덜덜 떨면서 하는 발표를 한번 경험해 봐서 아는데 그렇게 온몸이 떨릴 정도로 떨리는데 목소리가 안 떨리게 나오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녀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온몸으로 덜덜 떨면서도 노래를 떨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그녀의 노래가 끝난 뒤 심사위원들이 울고 있다. 작사가 김이나가 노래로만 평가했다고 말하며 심리치료를 있느냐고 물었다. 받고 약도 먹고 있다고 하니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그리고 이선희가수가 ‘웃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을 아이가 또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응…. 엄마 오늘 희곡 읽었는데 이거랑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거든. 그거랑 같이 연결되어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나네.”라고 말하며 평상시 같으면 아이가 놀리는 거 부끄러워서 안 운 척했을 텐데 엄마 울었다고 말해주었다. 희곡 속의 소녀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막연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 소녀가 현실에 나와서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희곡으로 읽을 때는 작가의 의도대로 ‘잃어버린 것은 있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희망이 있다’ 정도로 편안하게 마음을 마무리했는데, 현실의 소녀에게는 그런 위로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억은 내가 제어를 하기도 전에 불쑥불쑥 내 마음에서 치고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마음에 켜켜이 쌓인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싶은 거다. 덜어내면 사라져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우물의 물이 다시 원래의 높이가 되듯 다시 차고 올라온다. 그러면 다시 말을 하고 싶어 진다. 마음의 슬픔이 많이 고여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경청과 공감이 아닐까?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두 가지 소재로 9명의 작가가 9가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각자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또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 가지 소재 중에서 '12월 26일'은 어쩐지 처음부터 무척 괜찮은 글감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겨울에 불현듯 울리는 매미 소리’는 어떤 의미인지 선뜻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이웨이’에 나오는 동화를 읽기 전까지는. 매미 소리가 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소리는 울음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매미는 우는 것이 아니라 “여기 내가 있어”하고 상대방을 부르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상실로 아파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 ‘잃어버린 것이 없다’라는 위로의 말보다, '함께 울고 웃어주는 매미 소리'가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때였습니다. 매미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매미 소리는 순식간에 숲을 가득 메웠습니다. 고라니는 그들이 함께 울어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와하하하하. 고라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와하하하하. 폭죽처럼 여기저기서 터지는 매미 소리는 분명 웃음이었습니다. 우린 모두 다 괜찮다고, 서로가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주고받는 유쾌한 웃음소리였습니다.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습니다. p. 124
https://youtu.be/kJ-7hnHzE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