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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y 29. 2021

달팽이는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나의 아침은 새벽 4시에 시작된다. 4시에 바로 일어나진 않지만 일단 깨어있긴 한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은 3살 아이를 다시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밥은 혼자 먹을 줄 알지만 때가 되면 챙겨줘야 하고, 똥오줌은 가리지만 치워줘야 하고, 잘자지만 새벽에 자주 깨고,  자기들끼리 잘 놀지만 집을 지저분하게 한다. 원래 예민한 편이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 4시에 냥이 두 마리가 잡기 놀이를 하고 있으면 나 혼자 깬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쿵덕쿵덕 소리에 아래층 이웃이 혹시 일어나실까 걱정되어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밥과 물을 준다. 그러면 잠시 소강상태가 된다. 그러나 나의 잠은 이미 달아난 상태이다.


  미적미적 출근해야 하니까 더 자야 한다며 다시 누워서 한 시간이 지난다. 이제 5시. 출근 준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있다. 그 시간 동안 잠시 이것저것 나만의 것을 뒤적거려본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써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브런치에 올려진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어영부영 6시가 가까워 오면 달팽이를 확인한다. 직장동료의 집에서 키우던 달팽이가 알을 낳아 새끼가 100마리는 된다며 가져갈 사람 신청을 받길래 냉큼 손을 들었다. 겁도 없이. 상추 잎 하나를 들어서 주셨는데 그 안에 새끼 달팽이가 10마리가 되었다. 작은 통에 담아서 아이들이 좋아할 생각을 하며 들고 갔다.


아이들은 아주 잠깐 흥겨워하더니 다음부터는 내 몫이 되었다. 매일 새로운 상추를 주어야 해서 상추를 사서 씻어서 지퍼백에 넣어 냉장고에 다. 그리고 출근 준비 전에 한 장을 다시 물에 씻어 녀석들에게 준다. 그렇게 키웠는데 한 마리씩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상추를 갈아줄 때마다 사라지는 달팽이들에게 어쩐지 미안해진다. 미숙한 내가 키우지 않았다면 오래 살았을 텐데 우리 집에 와서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다 또 마음을 고쳐 먹는다. 100개 이상의 알을 낳는 건 다 살지 못해서 일 거야. 나 때문이 아니야.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혹시 다 죽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매일 신선한 상추를 제공했다.


그렇게 3마리가 살아남았다. 사실 달팽이를 키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상하게 나는  생물에 관심이 생겼다. 그 전에는 맹세코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항상 시작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인데, 남편이 옆에서 보기에는 내가 좋아서 키우는 것 같다고 한다. 그 말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달팽이 입양 건만 해도 그렇다. 이전에 달팽이를 키우다가 알을 낳고 하나둘 죽었다. 그때 얼마나 속상하던지. 그전에는 구피를 키우다가 죽었다. 아이들은 알이나 새끼를 낳을 때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모든 관리는 나의 몫이었다. 살아있을 때도, 그들과의 이별도. 일은 자꾸 커지는데도 밥 주고 치우고 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어쩐지 따뜻해진다.


지금 집에는 사람 4명, 냥이 2마리, 세보지 않았지만 많은 구피, 달팽이 3마리, 화분 10개, 수생식물이 담긴 병, 작약 20송이가 함께하고 있다. 구입, 실패, 공부, 입양 같은 일들을 통해 조금씩 나아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쉽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계속 배운다. 달팽이도 그렇다. 여기저기 뭘 먹여도 된다고 나와 있지만 집에서 키우는 달팽이는 되도록이면 상추만 먹이는 것이 좋다. 2주에 한 번씩은 코코피트 흙을 갈아주어야 한다. 녀석들은 어두운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보고 있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어두운 곳에 두었다가 밥을 줄 때만 만나야 한다. 그러면 만날 때마다 줄기만 남은 상추와 쑥쑥 자라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쉽게 들였지만 쉽지 않았고, 마음을 주지 않을 줄 알았지만 마음을 준다. 어쩌면 처음 데리고 올 때부터 나는 마음 한 자락을 내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졸리고,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나는 베란다로 나갈 때마다 새순을 보여주는 나무들이 좋다. 이른 아침 눈도 떠지지 않았는데 냥이들 밥 주면서 쓰다듬는 털의 감촉이 좋다. 상추를 주면 미끈한 몸을 내놓고 야금야금 기운차게 먹어대는 달팽이의 모습이 좋다. 아무거나 먹지 않고 아무 데나 싸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살지 못하지만,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먹고, 싸고, 살아가는 그들과의 공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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