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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n 28. 2019

숙취해소엔 포도맛

데일리 릴리리 004.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이면 당기는 음식이 있다. 아마 사람마다, 전날 무엇을 얼마나 마셨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엔 술을 아주 많이 마신 다음 날이면 꼭 웰치스를 마신다. 포도맛 웰치스. 다른 포도맛 탄산음료는 성에 차지 않는다. 반드시 웰치스여야만 한다. 청포도 맛도 괜찮지만 보라색의 포도맛이 제일이다.

폴라포도 좋다. 요즘은 폴라포가 소다맛도 나오고 했지만 역시 오리지널 포도맛이다. 실제로 아이스크림이나 달달한 음료로 숙취해소를 하는 사람도 제법 많은데, 당분과 수분이 알코올분해에 도움을 줘 과학적으로도 숙취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때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숙취해소로 유행이었는데, 몇 번 마셔봤지만 반도 마시지 못했다. 내 몸은 달콤함이 없는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거부했다. 그래서 대신 믹스커피를 타마시고 그랬다. 역시 숙취해소엔 웰치스와 폴라포야, 하고 투덜대면서.

대학교 때 대천해수욕장으로 MT를 갔었다. 여름방학마다 우리 과와 자매결연 비슷한 교류를 하는 도쿄외대 일본인 학생들이 홈스테이를 하러 서울에 왔는데, 홈스테이 도중에 꼭 다함께 MT를 갔다. 대천해수욕장 근처 학교 수련원에서 2박 3일 동안 진행하는 MT는 그냥 술판이었다. 바다에 나가서 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술 먹고 다음 날은 종일 누워 있다 저녁에 또 다시 술을 먹는 날의 반복이었다.

술만 먹으면 날 보고 “전지횬-!”, “너무 예뻐-!”를 외치는 한 학번 위의 일본인 남학생이 있었다. 물론 나는 전지현의 머리카락 한올조차 닮지 않았으며, 예쁘지도 않았지만 아마 그는 그냥 술에 취해 막 아무 말이나 던졌던 것 같다. 술을 아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면 친한 학생들 몇 명이서 둥글게 둘러 앉아 또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과자와 함께 먹고 그랬다. 그야말로 부어라 마셔라 해댔다. 이틀 연속 그렇게 마셨더니 마지막 날 아침엔 거의 변기를 부여잡고 살았다.

수련원 건물 앞 마당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폴라포가 미친듯이 먹고 싶었다. 보라색 얼음을 슬쩍 밀어올려 쭉 빨면 달콤한 포도맛 즙이 입안에 훅 퍼지고 깨물면 바삭이는 시원한 얼음 알갱이가 너무도 먹고 싶었다.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근처 가게를 죄다 돌아다녔다. 하지만 동네 가게에서도 편의점에서도 폴라포는 팔지 않았다. 나는 조금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결국 죽을상을 하고 아픈 속을 부여잡은채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는 결국 또 토를 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위액을 쏟아냈다. 이미 위 안에는 내보낼 것도 없었다. 그러고 약 두 시간 반 동안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죽은 듯이 있었다.

그 후로 폴라포가 보이면 냉장고에 쟁여두는 습관이 생겼다. 한동안 술을 끊었을 때는 사지 않았지만, 지금도 술을 많이 먹을 것 같은 날이면 미리 웰치스와 폴라포를 사둔다.

이젠 그렇게까지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웰치스 포도맛. 라인프렌즈 카페에 앉아 코야 블루소다를 마시며 그렸다. 외국인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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