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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l 01. 2019

죽으면 영원히 잔다지만

차를 타면 늘 잠이 들어요


뭔가를 타면 잔다. 승용차를 타던, 기차를 타던, 비행기를 타던.

자는 것도 멀미의 일종이라고 했다. 적당한 진동이 졸음을 유발하기도 하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단조로운 풍경은 뇌가 쓸데없는 정보를 거부하게 만들어 잠이 온다는 것이다. 특히 차 안에서 책을 읽었을 때 멀미가 나는 것은 몸은 움직이는데 눈은 정지된 정보를 읽고 있어, 이로 인한 부조화가 멀미를 일으킨다고 한다. 인간의 몸은 참으로 재미있다.

아무튼 차 안에서는 절대 활자를 읽지 못하니(기차나 비행기는 진동이 덜해서 조금 낫다) 멀미가 있는 편이기는 하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감성 터지는 본 아이버나 검정치마의 노래 같은 걸 들으면 눈물까지 찔끔 난다. 아 물론 나는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으면서도 운다. 가사에 집중해서 들었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거리 버스를 타기 전엔 늘 듣고 싶었던 앨범을 듣는다. 밖을 돌아다니거나 작업을 하거나 하면서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 위해서는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꼼짝없이 한정된 공간에 갇혀서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장거리 버스는, 그래서 한 장의 앨범을 듣기에 가장 좋은 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두 곡 정도 듣고 나서는 늘 잠이 들고 만다. 에구구, 하면서 잠에서 깨보면 귓가엔 어느 새 8, 9번 트랙 쯤이 나오거나 전혀 다른 음악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다시 1번부터 튼다.

디지털로 한 곡씩 음악이 발표되고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아티스트가 트랙의 순서까지 치밀하게 생각하며 만든 앨범의 힘을 믿는 나는 앨범을 순서대로 듣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2~3번 트랙 즈음에 수마는 찾아오고야 만다.

7번 트랙에서 잠이 깼을 때 이번엔 2번 트랙으로 돌아간다. 두 곡 정도 듣고 또 잠이 든다. 비슷한 부분에서 깬다. 이젠 3번 트랙으로 돌아간다. 어디서 잠이 들었는지 아리까리할 때는 의심되는 트랙을 좀 듣다가 ‘노래가 별로였군’하고 넘겨버린다.

잠에서 다 깨고 나면 이젠 귀가 피곤해진다. 좋아서 들은 게 아니라 일종의 의무감으로 들은 거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런 앨범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보지만 그다지 취향이 아닌 경우, 몇몇 곡이 좋아서 앨범을 통째로 들어봤으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경우, 명반이라고 해서 들었으나 여전히 취향이 아닌 경우에 속한다.

‘그래 역시 음악은 좋아하는 걸 들어야지!’하고 또 만들어놨던 플레이 리스트나 요즘 꽂힌 음악을 주구장창 듣는다. 그렇게 앨범 완청(完聴)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는다.

기차는 비교적 자유롭다. 오래는 못해도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 폰으로 게임도 할 수 있다. 그래도 금방 졸려서 음악을 들으며 또 잔다. KTX는 너무 빨라서 알람을 맞춰놓고 자야한다. 자칫 잘못 하다간 자다가 내릴 역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종착역이면 편하게 잘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는 편하게 잔다. 차에서도 공연히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자지 않는다. 왠지 이동하는 중에는 의자를 크게 뒤로 물리지 않고 번듯하게 앉아 목이 부러져라 직각으로 꺾고 자는 걸 좋아한다. 물론 이렇게 자면 목이 너무 아프지만 그게 잠이 잘 온다. 이상한 노릇이다.

2시간 반 가량의 비행은 잠을 자기 아주 좋다. 한 번은 일본에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좌석에 앉아마자 이륙도 하기 전에 잠이 들어 착륙하기 20분 전에 깬 적이 있다. 그야말로 꿀잠이었다. 그 때 얼른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창문 너머로 가까워지는 지평선을 바라봤더랬다.

기내식을 줄 때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깨서 기내식을 받아 먹었다. 호주에서 생활할 때는 국내선을 많이 타고 다녔다. 혼자서 호주 대륙을 여행했는데, 호주가 지도 상으로는 그냥 섬 같아 보여도 꽤나 땅덩이가 넓어서 두어시간을 타기도 부지기수였다. 짐이 많아서 저가 항공사보다 추가 수하물 요금을 물지 않는 콴타스를 애용했다. 콴타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한항공 쯤이다. 콴타스는 서비스가 좋아서 국내선에도 기내식을 줬다. 한번은 기내식을 먹고 마음놓고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떠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승무원이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고 있었다. 얼른 손을 뻗어 아이스크림을 넙죽 받아먹었다. 가난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히죽이며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밖은 여름이었지만 기내는 좀 추웠다. 잠복도 많지만 먹을 복도 많나보다.

중학교 때는 잠을 잘 못 자서 같은 CD가 두 번이 다 돌아가도록 못 자고, 라디오를 새벽까지 듣고 그랬다. 그 때 그 잠을 지금 다 자는 걸까? 아무튼 나이 들면 잠이 준다는 거 다 구라다. 누구는 죽으면 영원히 잔다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


어쩔 수 없다.




Title image _ My Own Private Idaho (1991, Gus Van Sant)

차를 몰고 가다 바다가 너무 예뻐 내렸던 어느 날. 창문에 비친 바다와 구름을 찍었다. 운전할 때는 자면 안된다.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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