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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l 03. 2019

영원한 것은 없지만 - 왕가위 영화의 추억을 따라서

데일리 릴리리 006.


5년만에 찾은 홍콩은 달라지지 않은 듯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홍콩에 간 것은 2014년 10월이었다. 우산시위가 한창이었다. 홍콩의 상징이라는 트램은 운행을 중단했다. 빅토리아 피크에 가보려고 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시위 한창이라는 나라에 가도 되나 걱정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세계 곳곳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다. 심지어 멋모르고 잡은 호텔은 어드미럴티 앞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거리는 매우 평화로웠다. 처음 이틀은 시위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밤에 간 몽콕 야시장 근처에서 마침내 시위대를 만났다. 그들은 무언가를 격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무지한 나는 그것이 광둥어인지 베이징어인지도 판별하지 못했다. 어찌됐든 함성뿐인 평화 시위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우리는 마치 그것마저 관광의 하나인 것처럼 몇 걸음 옆에서 시위를 구경했다.

낮엔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앞을 지나갔다. 시위대는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쳐놓고 있었다. 곳곳에 우산이 걸려 있었다. 우산혁명. 평화주의를 표방한 그 혁명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2019년 3월, 5년만에 홍콩을 다시 찾았다.

주 목적은 콘서트였지만 사흘 더 시간을 내서 홍콩을 돌아봤다. 그 때 못 갔던 곳을 가고 싶었다. 빅토리아 피크는 고민하다 가지 않았다. 사진으로 본 야경은 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풍경이었다. 누구나 다 가는 곳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기로 했다.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에 등장하는 골목길이었다. 길을 순찰하던 유덕화가 장만옥을 만나고, 유덕화가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장만옥의 전화를 기다리는, 오르막이 있는 돌담길. 전화부스는 애초에 촬영용이라 촬영이 끝난 후 철거했다고 하지만, 그 골목은 남아 있다.

구글을 뒤져 그곳이 어딘지를 알아냈다. 다행히 나처럼 그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곳이 캐슬로드와 컨듀잇 로드가 만나는 지점 어디쯤이라는 걸 알아냈다.

센트럴에서 그곳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날씨는 흐려서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회색의 날씨였다. 점점 산으로 올라가는 지형이라, 도중에 계단을 계속해서 걸어 올라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일까 의심도 들었지만, 일단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구글맵을 보니 고지는 눈앞이었다. 가까이 열대우림 우거진 산이 보였다. 어쩐지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 모습은 <아비정전>의 시작과 끝에 등장한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 풍경을 닮아 있었다.

계단을 넘어 도로 위로 올라갔더니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곳은 유덕화가 오지 않는 장만옥의 전화를 기다리던 곳이었다. 바쁘다고 이곳에 오기 전 한 번 더 <아비정전>을 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남편은 그 장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구글에서 검색해서 보여줬다. 검색하기도 어려웠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비정전>을 다른 장면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 장면이 좋았다. 장학우가 “그 땐 내게 돌아와줘”하며 닿지 않을 고백을 하고 나가는 장면과 함께.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장만옥이 기댄 바로 그 모퉁이가 나온다. 다만 저기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인도가 없어 위험한 탓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뛰어서 센트럴 쪽으로 돌아갔다. 날씨만 좋았다면 홍콩의 트레킹도 멋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드래곤스벡, 그리고 또 뭐 어떤 곳.

센트럴의 핫한 쇼핑센터인 PMQ에 갔다. 경찰 간부 숙소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해 복합쇼핑몰을 만들었는데, 트렌디한 샵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건물 구조가 그대로 쓰여 쇼핑몰로서는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입구엔 우편함 같은 것도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우편함마다 세 자리 숫자가 박혀 있어 <중경삼림> 속 양조위의 경찰번호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 유심히 봤는데, 그렇게 뒷번호는 없었다.

<중경삼림> 속 양조위는 이름도 없이 경찰번호 663으로만 불린다. 그의 경찰복 어깨를 보면 정확히 663이라고 적혀 있다. 심지어 그가 늘 샐러드를 사러 가는 샌드위치가게 주인 아저씨도, 왕페이도 그를 633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의 번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샌드위치가게에서 일하는 외국인 점원 뿐이다. 그는 아저씨가 633이라고 하자 ‘663이 맞다’고 정정해준다. 한국어 자막에서는 이를 오역해 ‘633이 맞다’고 잘못 나온다. 무지로 인한 오류다.


그냥 방 번호였을 것 같다는 추측만 든다. 아무튼 663은 없었다. 그 비슷한 633도.


2014년엔 어쩐지 좋아했던 홍콩 영화 속에 등장한 명소를 갈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겠다. 왕가위의 영화와 양조위는 내 십대 시절의 끄트머리를 장식한 사람들이었다. 어딘가 모를 쓸쓸함에 빠지고 제멋대로 해석한 허무주의에 빠져 이십대를 탕진했다. 지금에 와서는 좀 더 좋은 롤모델을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놀았던 내 젊은 날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화양연화>에 나왔던 골드핀치 레스토랑을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2014년에는, 골드핀치 레스토랑의 메뉴가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는 먹는 게 아주 중요한 때였다. 이제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보고 해서 그냥 분위기와 역사를 따라 식당을 정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를 찾아봤더니 폐업했단다. 2018년에도 멀쩡히 운영했던 레스토랑이 폐업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아쉬웠다. 왜 나는 그 때 골드핀치 레스토랑을 가지 않았을까? <화양연화>는 내 인생 영화였다. 누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늘 망설임없이 <화양연화>를 택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고, 말이 없고 감정이 절제된 영화. 국수를 먹는 양조위의 뒤통수에도 쓸쓸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도 그녀도 어떤 사랑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영화가 좋았다.

언제든 갈 수 있다면 발길이 가지 않지만, 이제는 갈 수 없다고 하면 마냥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였다. 나는 2014년에 골드핀치를 가지 않은 내 안일한 결정을 후회했다. 왜 그 장소가 언제까지고 유적처럼 그곳에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비정전>에서 아비 일행이 아지트처럼 자주 가던 퀸즈카페는 진즉 문을 닫았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콘서트에 가는 날 오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타야지 해서 탄 것은 아니고 마침 눈앞에 있어서 탔다. 홍콩을 돌아다니다 보면 센트럴 같은 데야 하루에 몇 번을 지나게 된다.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허리를 숙여 들여다보던 양조위의 집은 건물 째로 철거되고 없었다. 콘크리트 잔해가 그대로 있는 것이, 철거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집은 원래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의 집이었다고 한다. 2014년에만 해도 아직 그 건물이 있어서 ‘저기가 양조위 집이야’라고 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갔었다. 어느 포스터 속의 왕페이처럼 하얀 스티로폼그릇을 한 손에 들고 에스컬레이터에 무릎을 굽힌 상태로 앉아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많아 부끄러워 엉거주춤한 자세로만 찍었다. 다음에 와서 찍지 뭐. 그 땐 그랬다. 이제 그 건물은 사라져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일하던 샌드위치 가게(그곳이 세븐일레븐으로 바뀐 건 유명하다), 맞은 편의 캘리포니아 바(건물 이름에만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따지고 보면 이미 20년도 넘은 영화였다. 내가 그 영화에 빠져있던 10대 때도 그 영화는 나온지 10년은 된, 오래된 영화였다.



우산혁명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5년 사이 홍콩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어떤 것은 그대로였다. 고층 빌딩과 좁고 낡은 골목길과 오래된 건물, 미래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듯한 홍콩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 뭐 아무튼 그런 비슷한 것들.  
 
바라던 것을 모두 이루진 못했지만 트램은 좋았다. 2014년엔 트램을 운행하지 않아서 못 탔었다. 어지러운 네온사인 환한 홍콩의 밤거리를 트램을 타고 지나고 있노라면, 이렇게 영원히 트램을 타고 있어도 좋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14년의 우산혁명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다시 홍콩에선 민주화 운동을 넘어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시위대가 무력으로 의회까지 점거했으며, 영국 정부에선 홍콩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과연 이번엔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불씨는 우산혁명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없는 거다. 무언가는 이루어졌다.

불완전한 내 인생도 무언가를 이루었기를 바란다.   

트램. 영원히 타고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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