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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l 15. 2019

저는 문과생인데요?

데일리릴리리 007.

숫자에 약하다.


<결혼 10년차 아이는 없습니다만> 매거진에 오랜만에 글을 업데이트하고, 브런치 메인 같은 곳에 글이 소개가 되었는지 조회수가 수천을 돌파했다. 한동안 바쁘답시고 소홀했던 브런치와 내 얄팍한 의지에 속죄하며 묵은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많은 사람이 읽어주어 기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달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계산에 대한 지적이었다. 서둘러 계산을 다시 해보니 과연 엄청난 숫자가 틀려 있었다. 중국 인구가 2억이라고 하는 상식 없는 인간과 내가 대체 뭐가 다른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이미 그 글을 보았을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병신같은 내 산수머리에 좌절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숫자에 약했다. 수학은 물론이고 간단한 산수도 힘들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어, 성적만큼은 좋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했다. 때문에 나는 어렸을 적부터 어른스럽고 똑똑하고 (그리고 아마 좀 재수가 없었으리라) 아무튼 그런 이미지였다. 갑자기 무슨 잘난 척을 시작하는지 의아하시겠지만, 이어질 얘기를 위해 필요한 정보라 어쩔 수 없이 적었다. 나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재수없다.


3학년인가 4학년 때, 내가 부반장이었을 때다. 학급에서 무슨 투표를 했다. 새 학기의 반장 부반장 투표였을까? 뭐에 관한 것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아이들의 표는 보기1, 보기2, 보기3의 3가지로 갈렸다. 당시 한 학급엔 반장과 남자 부반장, 여자 부반장 이렇게 세 명의 임원이 있었다. 우리는 교탁 앞에 나와 투표함에 든 아이들의 표를 분류했다. 보기1을 반장, 보기2를 남자 부반장, 보기3을 여자 부반장인 내가 맡아서 셌다. 보기3에 투표한 아이들의 수는 적어서 3표밖에 되지 않았다. 뭐 더 세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득표 수를 모두 합하면 학급 아이들 정원이 나와야 하는데 1표가 모자랐다. 투표를 하지 않은 아이는 없었기 때문에 사라진 1표를 찾기 위해 학급은 심각한 분위기가 됐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3표여서 더 셀 필요가 없었고, 반장과 남자 부반장이 센 표만 다시 몇 번을 세봤는데 그래도 여전히 1표가 모자랐다. 도대체 1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모두가 지쳐서 슬슬 짜증이 북받칠 무렵,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내가 센 보기3의 득표 수가 3표가 아니라 4표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것은 한 장처럼 겹쳐 있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던 것이다.


겨드랑이와 정수리에서 땀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똑똑하고 잘나고 아는 것도 많은(당신엔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4표를 3표로 잘못 세는 유치원생도 하지 않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1장의 표가 땅에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연기를 해서 그 위기를 타개했다. 사실 선생님이 봤다면 아이의 어설픈 연기 따위 금방 눈치를 챘겠지만, 아무튼 여차저차 넘어갔다.


다들 당시엔 짜증이 좀 났으나 곧 잊어버렸을 일이겠지만, 그 사건은 내 어린 시절의 큰 실수 중 하나라 거의 20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후로도 숫자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 공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수능에서는 가장 점수가 낮게 나왔다. 국어는 즐거웠다. 정해진 정답을 찾는 것이었지만 글쓴이의 의도나 문맥을 파악하는 건 매우 재밌었다. 한때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기도 했으니까.


자연스럽게 문과를 택했다. 이과는 내 인생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물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공식을 외워서 겨우 문제를 풀었을 뿐이었다. 물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오히려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물리는 모든 것의 근원이고, 우주 이야기는 정말 재밌다.


내가 산수를 못하는 건 문과생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이 숫자에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암산을 열심히 하면 아이의 두뇌가 발달한다고 해서, 태교암산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요즘도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아이는 나같은 굴욕(?)을 겪지 않게 하려고 한때 암산을 연습해본 적이 있었으나 나를 편하게 해주시려는 하느님의 크나큰 배려 덕분인지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이른 치매 예방을 위해 스도쿠도 잠깐 해봤으나 게임을 하는 것도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여 미련없이 관뒀다. 그렇게 숫자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기본적인 계산만 할 줄 알면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면 되니 더 편리해진 세상이다. 물론 그러려면 기본적인 수식 성립은 할 수 있어야겠지만.


이상 문과생 이름을 팔아 산수바보임을 스리슬쩍 묻으려는 비겁한 겁쟁이의 장황한 변명이었다.

어쩐지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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