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운명을 사랑하라
우울함이 습관인 시절, 내 운명을 탓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의 쫓아오는 어둠보다 희미하게 보였던 창문의 불을 기억한다.
삶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고, 과거의 어두운 비밀은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며 살지 모른다.
교사가 된 이후에, 학생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 스스로 정한 비밀이 아니라 타인이 강요한 비밀로 상처가 깊어져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돕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학생들 또한 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보다는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기회를 늘 얻게 되기를 바란다.
너는 여러 가지를 숨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에, 이 세계에서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이. 세. 계. 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글을 쓰려고 이야기를 떠올리는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글은 어떤 소설을 읽더라도 하루키만의 문체가 있어서 좋다.
스토리의 진행과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묘한 느낌이 드는데, 만약 내가 걷고 있다면 구름 위를 걷고 있지만 구름이 유리인 듯 단단하게 무엇인가 밟히는 느낌을 받는다.
글을 읽으면서 무엇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동과, 따뜻함, 마음 채움을 얻는다. 글자 뒤에 감정이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쓰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오늘 이야기를 쓰려니, 연륜 있는 많은 부장님들이 해주셨던 조언들이 귓가를 맴돈다.
- 그 학생 삶의 마지막까지 손잡아줄 수 없는 게 사실이니, 손을 잡았다 놓는 순간 그 친구는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수 있어.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더 나을 거야.
모든 사람이 무엇인가는 비밀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품고 가져가야 할 비밀이 있는 것은 좋을 수도 혹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생긴 아픔의 흔적은 '감춰야 하는 비밀'이자 '언젠가는 드러내서 치료받아야 할 비밀'이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내가 만든 비밀]이 아니라 [만들어진 비밀]은 대부분 상처나 부조리를 그럴듯함 혹은 정상적임으로 포장하고 있는데, 과연 감춰주어야 옳은 건가?
[선생님도 선생님 삶이 있는데 너무 열정을 쏟지 마, 대충 하고 집에 가. 걔네들 그렇게 해도 별로 변하지도 않아 선생님만 개고생이지. 옛날에 애들한테 그런 식으로 해봤는데, 걔들 배은 망덕하더라. 진정성을 가지고 혼냈는데 오히려 혼났다고 나를 신고하고 그랬다니까. 샘, 그냥 걔네 너무 신경 쓰지 마. ]
[저도, 집에 가고 싶어요. 저도, 그냥 모르는 척하고 안 들은 척하고 싶어요. 저도, 그냥 말하고 싶은 눈빛 무시하고 가버리고 싶어요. 도와줘도 달라지지 않을 거 같고, 나는 힘도 없으니 그냥 돕는 척 조차 안 하고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제가 10시간을 개고생 해서 그 친구가 1시간이라도 삶에서 편안함을 느꼈다면 그냥 그걸 위해서 한 게 맞아요. 누가 욕해도 어쩔 수가 없어요. ]
평소에 그래도 친했던 부장님은 아마도 늦게까지 고민하느라 끙끙 앓는 나를 위해 진심으로 조언했었을 거 같다. 나의 대답 이후에 잠시동안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저 대화 이후에 오히려 내가 학생들을 도와주는 일에 진심을 담아 조언해 주시고, 다른 일들도 더 도와주셨다.
1. 입양 가정, 겉도는 대화와 가식적인 대답
[ 지나치게 한 개인의 내면, 비밀을 듣게 되면 오히려 털어놓은 사람(학생) 입장에서 거부감이 들어서 멀어지고, 오히려 지도하기 힘들게 될 거야. 나도 더 젊었을 때 그렇게 했다가 그 남학생이 스토커가 되어서 정말 고생 많이 했어. ]
[... 맞아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늦은 밤, 교무부장님과 나밖에 남지 않았었다. 물론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교무업무를 부장님과 같이 할 겸, 상담도 할 겸 여러 가지 이유로 남아있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대답을 남기고 어두컴컴해진 학교 주차장에 터덜터덜 걸어가, 차량 기어를 넣고 운전을 했다.
집에 가는 길이 쓸쓸했지만 그래도 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 친구가 제발 마음이 움직였기를 바랐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매해 담임교사들에게 전화를 한다는 일종의 소문을 들었고, 실제로 담임교사가 되고 바로 전화를 받았었다.
"저희 애가 실은 입양된 아이인데 상처가 많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어렸을 때 세 번이나 파양 되었어요. 그러고 저희가 데려왔는데 차를 타고 이동한 기억이 끔찍한가 봐요. 그래서 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저에게도 별로 마음을 열지 않아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어요. 그 친구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도 이해를 좀 해주세요"
심지어 직업은 목사님이었다.
그 친구가 입양가정의 아동이니까, 별로 혼내지 않고 넘어가고 자도 내버려 두고 대들어도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 오히려 그 친구를 애정으로 돌보는 것이 아니라 방임하는 것만 같았다.
그 친구는 어쨌든,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종종 대들고, 학생으로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마음먹고, 다른 친구들한테 하듯이 엄청 혼을 냈다.
그 친구 마음의 벽은 정말로 두꺼웠다. 대화를 할 때는 전혀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제대로 입에 담지 않았다.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었고, 결국 알지 못한 채 끝났지만 부모님은 막상 너무 바쁘신지 아이의 학교생활에 세세한 관심이 없으셨다. 아이가 잘못을 해서 전화를 하면 매번 '트라우마' '상처'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달라.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교복을 뭘 입고 갔는지에 대한 정보는 대화하는 중에 전부 아니 거의 다 틀렸다.
긴 훈계 속에 학생은 아주 살짝 부모님에 대한 속상함을 내비쳤지만, 결국은 '난 괜찮아요'로 끝나고
대화는 안되고 나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한 채로 집에 돌아갔다.
자려고 누웠을 땐 부장님 이야기까지 귀에서 맴돌면서 걱정이 되었다.
아침이 밝아 학교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일찍 오는 부장님 몇 분의 주차된 차량이 보였다.
[드르륵-]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교무부장님이 웃으면서, 가방 놓고 교실 근처로 빨리 걸어가 보라고 하셨다.
[어제 샘이 얘기한 그 애 같던데?- 저기 거의 원숭이들처럼 매달려서 아까 엄청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더라. ]
[네?]
교무부장님의 미소가, 뭔가 고생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감사했다.
모르는 척 계단을 올라가 보니 정말로 유리창 창살에 매달려서 멀뚱멀뚱 기다리고 있는 어제 그 학생과, 학생의 친구가 서있었다.
그 아이는 같이 온 자기 친구를 몇 번 쳐다보더니 멋쩍은 얼굴로 등 뒤로 돌린 손에 쥐고 있던
비타 500을 1병 내밀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이거라도 드세요. 아까부터 일찍 와서 기다렸어요. 저도 앞으로 더 노력할게요.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해서 수행평가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솔직히 그 친구가 겪은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차마 헤아릴 수도, 헤아려 도와줄 수도 없었다는 점이 정말 슬프고 답답했다. 입양가정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서류로 나와있지만 학생의 부모님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없어서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면 혹은 알리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학교에서 실질적 도움을 요청하고 요청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친구의 비밀은 결국 비밀로 간직되고 끝났지만, 졸업을 시키면서도 내가 아는 것이 적고 도움을 줄 능력이 미치지 못해서 조금은 슬펐다.
그래도 학기말까지 나름대로 친구들 도움을 받아서 수행평가도 제출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지금도 잘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친구를 포함해 맡았던 학급에서 마지막에 들었던 다른 감동적인 말은 선생님이 알라딘에서 나오는 '진흙 속의 진주'와 같은 사람인 것 같다는 표현이었다. 알라딘에서 이야기하는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눈치채 줄 수 있는 학생이 있다니. 진심을 쏟았더니, 진심이나 진실을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나름대로는 전달된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웠고 실은 아직도 고맙다.
지금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침 일찍 창 아래에서 기다리던 그 친구의 진심이 담긴 눈빛은 기억에 정말 길게 남을 것만 같다.
2. 자해를 종종 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 리더십 있고 똑똑한 학생
자해를 일삼는 가정폭력 피해자와, 밝고 리더십 있는 학생.
두 가지의 묘사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
이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어딘지 모를 날카로움을 지녔다고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한눈에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또래 중학생들과는 달리 성숙하고 전체적인 상황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똑똑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어느 정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말도 조리 있게 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의견 수용도 잘 되는 편이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조(신고의무 등)
①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
하지만 상담을 하며 지켜보니 팔목에 자해의 흔적이 있었다. 상담선생님과 협조하여 함께 상담을 진행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본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자해를 종종 했고 자기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서 '독서'나 '자기 계발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성찰하고 자제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해주었다. 어린 동생이 있는데 부부싸움이 심해지면 자신이 동생을 보호하지만 자신도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화를 듣는 나에게도 두려움이 전율처럼 울리고, 복도라는 공간을 뒤덮었다. 그만큼 그 친구의 감정의 크기는 강하고 우울했다. 부부싸움이 커지면 재떨이가 산산조각이 나고 고성이 오가고 자신들에게도 물건이 날아온다고 하였다. 엄마는 그 상황이 감당되지 않아 자신들에게 스트레스, 화풀이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정폭력?]
교원도 신고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보건선생님, 학년부장님, 상담선생님과 협조하여 다시 고민을 했다.
신고를 해야 하나? 분명 가정폭력의 내용들이 담긴 내용들을 이야기했는데, 그냥 모른 척해야 하는 건가? 신고의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협의를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학교로 전화 한 통이 왔다. 나를 찾는 전화였는데 상당히 비밀스러운 느낌으로 전화가 왔고 알고 보니 청소년 복지 상담센터 '가정폭력' 관련 일로 담임교사를 찾는 일이었다.
통화를 해보니 이미 가정폭력 신고는 주변인들을 통해 됐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문제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아버지를 면담하고 있으며 학생의 학교생활 모습이 어떤지 혹시 면담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거짓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고 하였다.
내가 학생에게 들은 이야기 및 학교 생활을 이야기하니 센터에서 몇 분이 학교로 직접 오셨고, 학생 및 나와 면담을 하였다. 이유는 내가 학생에게 들은 가정의 상황과 지금 추적 관찰 하면서 면담한 내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데 가정의 문제를 온전히 개입할 수는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엄청난 해결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모양새로 그냥 멈추어져서 그 학생의 생활은 지속되는 듯했다.
나도 이미 신고된 상황에서 무엇을 더 할 수 없었다.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그저 그 학생이 학급을 최소한의 안전기지로 여길 수 있도록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덧붙여 개인이 그 짐을 다 감당하는 것은 옳지는 않다고 여기지만,
상황상 모든 것을 변화시켜 줄 수 없다면 학생이 더 강해질 수 있기를 바라고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 친구는 다른 교사나 다른 친구들에게는 본인의 어두움이 잘 드러나지 않게
전심전력을 다해 모든 것을 버티는 친구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내 이야기, 책 이야기.. 각종 이야기들을 해주고 관심을 보이면서 그 친구가 더 강해져서 온전히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그냥 버티지 말라고, 슬프면 다 내팽개치라고 하고 싶기도 했지만 버틸만한 그릇이 되는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버겁겠지만 그래도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악물고 지내는 것이 현실에서 가장 적용가능한 차악이라고 생각했다.
종업 이후에 그 친구가 보내준 카톡인데, 속이 텅 빈 말이 없었다는 말이 참 슬프면서도 고마웠다.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정말로 나보다 적은 날을 살았지만 더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산 친구들도 많이 만난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보면 내가 도울 수 있는 한계점에 대해 명확히 느끼면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돌려주고 싶어서 노력은 했지만, 현실과 능력의 벽에 부딪혔던 사례들이었다. 오히려 돌려주려고 노력하다가 거꾸로 그 학생들에게 내가 진심 어린 말을 도리어 선물로 받은 듯하다.
기억은 '인간이 축복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창고'
- 안티파트로스(일상의 문제를 고민한 윤리학자, 스토아학파를 이끈 철학자)
돌려줄 수 있고, 서로 주고받을 것이 현실적으로 먼지뿐인 슬픔이라도 기억이라는 축복의 창고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사람들과의 삶이라고 믿는다.
“절뚝거림이 다리엔 장애가 될지언정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에픽테토스]
일어난 일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 순 없지만 그 일에 어떤 반응을 할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던 에픽테토스(스토아 철학자).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이어져나가는 삶의 하루들이 누군가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후회가 아니라 빛이 될 날을 꿈꾸며 학교도 나 자신도 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