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뒷모습에 대한 개똥철학과 잡소리
한 달에 한 번 비밀투표로 왕따를 뽑는 백연여고 2학년 5반,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모두 섞여버린 그곳에서 점점 더 폭력에 빠져드는
학생들의 잔혹한 서바이벌 서열 전쟁
티빙에서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드라마를 했었다. 약간의 자극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래도 학교의 안 좋은 민낯에 대해 참신하게 풀어낸 드라마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이 드라마로 인해 좋은 영향보다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모방 학교폭력(실제로 피라미드 게임을 해서 왕따 발생)이 발생하는 바람에 학부모님들께 주의를 요하는 교육용 가정통신문 발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드라마 속 문제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 게임은 애초에 왕따를 만들어내겠다는 자체가 잘못되었기는 하지만, 왕따를 학급 내 '투표'로 뽑으면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느낌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투표는 눈 가리고 아웅일뿐 실질적 권력자는 따로 있고 투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척'을 공고히 하여 타인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고민을 안겨주는 시스템일 뿐이다.
이건 드라마이지 않나? 아니요.
물론 자극적 요소를 강조하여 더 심각해 보이고 열받게 만들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피라미드는 몇몇 학교에서 충분히 존재한다. 방관하는 어른과 방관하는 친구들이 잘못된 힘을 강화하는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음속에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방관하는 학창 시절 학생들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상황의 힘 앞에서 작아지는 존재인지 충분히 이해하며, 안타깝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어딘가에서 폭력을 방관하는 누군가를 비난만 하기도 어렵지만 비난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해결되기 어려운데 언젠가 꼭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젯거리 중 하나이다. 강화된 힘의 압력 앞에서는 본인이 상당한 권력(정신적 혹은 신체적 힘이나 지위의 우월성 등)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각오해야 하기에 결국은 심각한 상황 앞에서 모두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는 듯하다.
과거로 돌아가, 학창 시절
초등학교 5학년 11월쯤 부천에서 서울로 전학을 갔다. 처음 전학 와서 멋모르고 아무렇게나 하다가, 소위 그 학교 노는 친구들에게 찍혀서 약간의 빈정거림과 조롱 비슷한 것을 받으며 괴롭힘을 당했다.
부천에서 다니던 학교에 비해 이사 간 학교의 학군이 더 좋지 않아서였는지 그저 내가 그 친구들과 결이 달라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이전 학교에 비해 숙제도 적고, 수업도 덜하고 시험도 쉬웠다. 성숙하게 옷을 입는 친구들도 많았고 부모님의 간섭 없이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는 친구들도 처음 봤다.
처음엔 '이게 뭔 상황이지'라고 속상하기만 하다가, 우선은 나도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 상황에서 더 나아질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는 별로 성숙하지 않은 답이 나오긴 했지만, 어느 정도 전략이 성공하기는 했다. 2달간의 피곤한 학교생활을 마치고 겨울방학 동안 고민을 거듭한 뒤 6학년에 올라가서는 처음 반에 올라온 친구들 중 소위 '옷 잘 입고 외모가 괜찮고 예체능에 소질이 있으면서 말발이 센 친구'들에게 어느 정도 잘해주고 그중 그나마 내가 친할 수 있을 법한 상황의 친구를 한 명 짝꿍으로 하여 3명 이상의 그룹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전학 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할 일하면서 다가오는 친구들과 친하거나 뭔가 같이 하는 친구들과 적당히 같이 다니는 정도였는데, 인간관계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피곤하게 느껴졌다.
학급에 성격이 센 친구들도 많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존재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는, 도와주다가 같이 물에 빠질 것만 같아서 모른 척해버렸다.
어쨌든 비겁하게 나하나 잘살자는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서 친구들하고 그냥저냥 되게 즐겁게 지내고 장기자랑도 나가고 초6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그룹으로 만날만큼 친하게 잘 지내기는 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은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중학교에 올라갔다. 상황이 더 별로였다.
이놈의 중학교는 일진 무리자체가 아예 공고하게 존재했다. 여자 n명 남자 n명(정확한 명수는 기억이 안 나는데 대략 합치면 30명 정도?). 우선은 초등학교 때 올라온 친구들과 적당히 친하게 지내고, 학급에서도 적당히 친하게 두루두루 지내자라는 마음으로 지냈다. (우선 공부도 해야 되니까?)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보는 우리 반은, 정말 거지 같았다.
반에 돌아가면서 따돌리는 은따가 있었고, 누구나 진짜 무시하는 왕따가 있었다. 소위 누구나 무시해도 좋을법한 찐따가 존재했다는 말이다. 찐따가 되어버리면 어제까지 친절하던 친구들마저도 자기가 같은 취급을 받을까 봐 말을 잘 걸지 않기 시작한다. 결국은 모든 활동에서 가장 손해 보는 자리에 위치하는 학생이 돼버린다. 우선권이 사라진다. 급식도, 활동지 배부도, 모둠활동도... 모두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런 정치 난투극에 관심 없이 공부만 하는 친구들도 존재했기에 몇 명의 친구들은 꼭 방관했다기보다는, 아마 후순위로 밀려난 것을 모르고 그저 그 친구들이 양보를 잘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찐따가 되는 이유도 정말 가지각색 끔찍하고 별로였다.
중1 때 수련회를 갔는데, 애초에도 별 힘이 없는 친구긴 했다. (여기서 얘기하는 힘이라 함은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특출 난 장점이다. 운동, 외모, 이성관계, 많은 인맥 등등. 아쉽게도 공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공부마저 못하면 더더욱 괴롭힘이 당연시되니 억울한 상황이 가중되기는 한다.)
그 여자친구가 화장실을 갔다가 아마 막힌 모양이다. (큰 볼일을 보고서)
그 일을 노는 친구 한 명이 몇 명을 모아 쑥덕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누가 봐도 수치스러워 보였는데, 다 들릴만큼 쑥덕거렸고 수련회 이후에는 찐따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관련 별명도 붙였던 것 같다.)
그 친구의 당황스러운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또 다른 경로로 찐따가 된 친구는 집이 가난해서였다. 또 다른 노는 친구가 가난한 그 친구의 근처 단독에 살았는데, 우연히 지나가다가 지하 방 창문이 열려있어서 그 친구가 거기 사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닥에 장판도 깔지 못할 만큼 좁고 어둡고 가난한 단칸방 공간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거지새끼라며 쑥덕거렸다.
뭔가 수업 관련 활동을 하는데 그 친구도 풀이 필요해 보였다.
풀을 주려고 했는데, "야 거지한테 풀 주지 마. 더러운 거 묻는다."라고 말하면서 나머지 모둠 친구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 친구의 눈물이 고인 눈도 잊을 수가 없다.
빌어먹을
그래 나는 비겁한 인간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내가 어떤 무리에 들어가나 환멸 나게 판정하고 누구랑 친하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말을 거는 횟수가 달랐다. 힘에 관심이 많은 남학생들이 그런 부분이 좀 더 심했다.
짜증 나서 말하기가 싫었다. 당시에 그래서 친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말없는 친구'로 생각하는 학생이 더 많았을 것 같다. 비겁한 위치에서 움직이는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 나고 그렇다고 그렇게 지내지 않으려니 내 학교생활에 이익보다 불이익이 많을 거 같아서라는 핑계로 점점 나까지 나빠져가니 그것 또한 짜증 나고.
당시 내 눈에 비치는 학교 선생님들도 짜증 났다.(교사가 된 이후로는, 지금 내가 그 짜증 나는 사람 중 한 명이면 어쩌나라고 종종 생각한다. )
학생들이 학교 화장실에 들어가면 눈이 매워질 정도로 담배를 피는데 아무도 지도를 하지를 않고
학교 안에서 키스마크를 남겨도 못 본 척하고
교내에서 면도칼로 칼빵(칼로 팔 등을 그으면 문신처럼 된다.)을 해도 모른 척
약한 남학생들은 청소시간에 창문에 연결된 난간에 불려 나가서 대걸레로 맞거나 고문당하고 있고, 가해자들은 이 놀이가 재밌다며 장난이라며 하지만 맞는 애는 정말 울고 있는데 와보지도 않고
뭐 하냐고 들여다보면 '장난이다'라고 하면 '그런가 보구나'라고 하고 가버리는
나도 비겁했던 주제에
비겁한 어른을 경멸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니체 - 선악을 넘어서中
괴물과 싸울 생각도 못한 비겁한 상태였지만, 모든 것이 잘못되어 보이는데 모른 척 덮어두고 지나가는 많은 것들을 보면서 그냥 어차피 이렇게 밖에 안될 거 나쁜 자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었다.
편하려고 걸쳐놓은 그룹의 친구들은 나와 한두 명을 제외하고 전원 흡연을 했으며, 청소년을 받아주는 술집(있으면 안 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한다는 거) 리스트를 공유하여 중2, 중3 때부터 술집을 다녔다.
앉아서 대화를 하면 10개 중 9개가 모두 학생신분에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한 말이 더 많았다.
어른도 아닌데 서로의 술주정에 대해 놀려대지를 않나, 그룹에선 그냥 들어주고 있었지만 이게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에 진심으로 유체이탈되는 기분이었다.
근묵자흑이니 나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원래 내가 그런 부분이 있었던가 라는 반성이 되기도 하고 여전히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학창 시절의 기억 구간이다.
어쨌든 여러 가지 생각의 카오스 속에서 어머니에게 죄송했다. 내가 이렇게 거지 같은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실 텐데 말이었다. 그래서 저녁 6시까지는 반드시 집으로 왔다. 어머니랑 같이 저녁 먹기 위해서.
당시 얘기 듣고 있던 그 친구들은 늦게까지 오빠들이랑 노래방 합석하고, 술 마시러 가고 지방까지 가서 남자 만나고 별 다양한 일들을 많이 했다. 때때로 그냥 다 내던지고 편하게 그 친구들을 대하고 완전히 친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이도저도 아니게 나는 그냥 저녁 6시까지는 대부분 집으로 왔다. 애들하고 점점 멀어져도 그냥 뭐 완전히 그룹에서 제쳐질 정도가 아닌 수준으로만 유지했다.
학교생활의 편안함을 위해서 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집안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자유영혼스러운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마음을 보일 수 있는 다른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 (힘과 관련 없이 친할 수 있는 친구)
당시에 이런 말들을 성격 다른 두 집단에 어디에도 말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거 보니 살면서 정말 답답했던 것 같다.
아 인간이란 왜 이런 존재인가?라는 개똥철학을 곱씹던 시절의 고민이 사춘기시절 사고 그대로 뇌 어딘가에 들러붙어 있었던 것 같다.
늘 고민만 했는데 교사가 되어 학급운영을 해보니, 학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학창 시절에 했던 고민을 답습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방관하는 교사 (나도 모르는 채 지나간 상황 속 방관의 1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방관하는 학생들
방관하는 부모
힘에 의지하는 학생들
올해는 학생부에 들어가 학교폭력 담당을 하다 보니 학급운영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동안 학급운영을 할 때는 최대한 차라리 내가 힘을 가지고 강한 애들이 힘을 과시하지 못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그리고 강한 애들은 가정 내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그 친구들은 따로 1:1 마킹 케어하면 어느 정도는 분위기가 정리됐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도 없는 고민과 오락가락하는 내 정체성이지만
그래도 오후 6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처럼 괴물과 친구가 되든 괴물이 되든, 근처에 있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다가 되지 않았다가였든 나는 어딘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누군가 지금 현재 괴물의 정체성을 지녀버렸다 한들 , 죽기 하루 직전이라도 좋은 마음으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될 기회가 있어 하루를 그렇게 살아낸다면 그것이 하루일 뿐이라도 더 나은 날들이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을 평가하는 것의 위험성, 사람들은 100의 완전한 선을 주로 바란다. 99의 선과 1의 악이 있으면 1의 악이 99의 선을 의미 없게 만드는 포기효과를 가져오는 듯하다. '거봐 악이 존재하잖아'라는 말로 나머지 선함을 무시하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동된다.
99의 악과 1의 선일지라도 선이 존재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사람이 모이면 대부분은 나조차 그렇지만 '옳고 좋은 것' 말고 '편하고 즐거운 것'을 선택하고 그것이 하나의 그룹 분위기가 된다. 그 편하고 즐거운 것이 좋은 것이면 다행인데 사람들은 대체로 나쁘든 옳든 좋든 상관하지 않게 되며, 점점 기준자체에 무뎌지는 것 같다. 그리고 악이 공고화된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천차만별이 되어가는 시대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오후 6시, 제 자리로 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