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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Sep 06. 2023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외제 맥주

파울라너 암 노커베르크

편의점에서 기네스 두 캔과 파울라너 두 캔을 집어오신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셨던 어머니께 4캔에 만 원이라 샀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뮌헨 시가 선정한 6대 맥주 회사이자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에 비어텐트를 설치하는 6개 브랜드 - 아우구스티너, 뢰벤브로이, 호프브로이, 파울라너, 슈파텐, 하커프쇼르 - 중 한국인에게 제일 익숙한 맥주는 아무래도 파울라너가 아닐까 싶다.


나만 해도 최초의 맥주들로 카스, 하이트 등의 한국 맥주, 일본에서의 삿포르 맥주 공장 투어, 터키에서 양고기와 곁들였던 에페스(Efes) 한 잔을 꼽지만, 그럼에도 집에서 가끔 눈에 띄곤 했던 맥주는 늘 두 종류, 기네스(Guiness)와 파울라너(Paulaner)였으니.


< 가는 길, 카드와 지폐를 받지 않아,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지폐를 동전으로 바꾼 후에야 티켓을 살 수 있었다. >


그렇게 아버지와 기네스에 대한 취향은 공유하게 되었으나 캔에서 따라 마셨던 잔잔한 파울라너의 밀맥주, 바이스비어(WeiBbier)는 특색이 적어 손이 자주 가지 않았다.


이런 취향을 반영해, 지난 6월 뮌헨을 찾았을 때는 파울라너 비어가든에 들를까 잠시 고민했다 아우구스티너-켈러의 마력에 붙잡혀 같은 비어가든만 세 번 갔고,


프라하에서 코젤(Kozel)을 마시고, 브뤼셀에서 델리리움(Delirium)을 마시고, 더블린에서 기네스를 마시기까지 파울라너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실제로 마지막으로 마셨던 파울라너 한 잔의 기억은 2020년 초로 거슬러 올라가니, 캔맥주로서 파울라너는 내게 아무런 매력을 지니지 못했음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이미 3대 양조장 - 뢰벤브로이 켈러, 호프브로이하우스, 아우구스티너 켈러 - 은 이미 다녀왔기에 이번에야 말로 한 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그 맥주를 마셔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야경이 예쁠 것으로 예상되는 차이니즈 타워(Chinesischer Turm)를 가는 대신 점심은 파울라너 가든에서 때우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에 공원을 스쳐 지나갔다. 한낮, 짙은 녹음 아래 아이와 놀아주는 부모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 공원을 지나 다리를 건넌 후 조금 더 걸으면 파울라너 비어가든이 눈에 들어온다.


< 입구 >


구글 지도에 파울라너를 검색하면 식당이 여럿 나오는데, 실질적으로는 리뷰 1,400개의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Brauhuas, 양조장)와 리뷰 5,400개의  파울라너 암 노커베르크(Paulaner am Nockherberg)가 쌍벽을 이루는 듯했다.


평점과 위치를 고려해 향한 곳은 노커베르크.



입구 왼쪽에 자전거를 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토요일 낮의 비어가든은 한적했다.



무알콜 맥주 등을 판다는 게 이색적이다. 1L들이 마스 잔도 판다.



좌측에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구역이 우측에는 맥주를 주문할 수 있는 구역이 존재한다. 입구에서 판을 하나 집어든 후 메뉴판을 확인하며,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가봤던 비어가든 중 가장 청결한 주방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돈가스 비슷한 슈니첼(Schnitzel)을 주문한 후 맥주 구역으로 넘어갔다.


당일 재고가 있는 파울라너는 바이스비어뿐이라고 해 아쉬운 대로 500mL를 주문했다.



석기로 제작된 전통 스테인(Stein) 맥주잔에 맥주를 따라주는 게 특징. 웃긴 게 파울라너는 없는데 다른 맥주들을 저 잔에 따라준다.



벌이 꼬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슈니첼 한 그릇에 맥주 500mL가 20유로면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양이 많아서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머스터드, 케첩 추가에 마찬가지로 돈을 조금 받았다. 다만 카드 결제가 가능한 것은 확실히 편리했다.)


우선 맥주부터 평을 하자면, 색채가 엷었다.


목으로 넘어갈 때까지 탄산이 남아있지 않아, 크으하며 들이키는 맛은 없었지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 어느 음식에도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깔끔한 맥주였다. 구수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너무 순식간에 목을 타고 넘어가 맛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점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빠른 만큼 부드럽게 음식과 넘어가 좋았다.



'얇은 고기'를 뜻하는 슈니첼의 정의에 충실한 슈니첼.


평범한, 얇디얇은 휴게스 돈가스의 맛이고 따뜻한 고기 맛에 먹는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튀김옷에 입혀진 가루가 약간 우두툴한 식감을 선사했다.


슈니첼은 슈니첼이고 독일 안주답게 약간은 짭조름한 게 맥주와 잘 어울렸지만, 세 덩이나 있었기에 고기만의 맛과 식감으로는 부족했다.


이러한 결함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는 게 같이 나오는 오이 감자 샐러드. 처음 주문할 때 샐러드를 줄지 감자 샐러드를 줄지 물어보는데 감자를 선택한 나 자신을 칭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조합.


퍼석할 수 있는 감자의 식감을 파와 군데군데 섞인 아삭한 오이가 잡아주고, 여타 안주들에 비해 살짝은 짠맛이 덜해 어정쩡했던 슈니첼을 보완해 주었다.


맥주 없이 슈니첼만을 먹을 때 장점이 더욱 두드러졌는데, 시원한 것이 미지근하게 뜨끈한 슈니첼의 온도를 가려주었다.



크랜베리 소스도 괜찮았다.


맥주와 더불어 벌을 끌어들이는 주범이긴 했지만, 시큼하지 않은 상큼함의 정점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어떻게 먹는지 몰라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찾아본 결과, 뿌려먹으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결들이니 확실히 식어버린 슈니첼의 식감을 끌어올려주는 마력이 있었다.


짜기 일상인 독일 안주에 단맛이 소개되니 그 조합 역시 생소하면서도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도 살짝 튀는 맥주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게 좋았다.


총 세 덩이가 나온다는 점을 고려해, 막 나와 따뜻할 때는 한 점의 고기로써 즐기고, 이어 미지근 뜨뜻해진 후에는 시원한 오이 감자 샐러드와 곁들여 어정쩡함을 보완하며, 아예 식은 후에는 크랜베리 소스로 떨어진 식감과 맛을 돋우니 꽤나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되었다.



내부를 이리저리 구경한 후 나왔다. 생선을 굽는 할아버지 한 분, 열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레스토랑 구역, 그리고 전시해 놓은 잔들까지.



그리고 다음 목적지가 위치한 카를플라츠(Karlplatz)로 향하던 중 지나친 본사 건물.




뮌헨까지 와서 마신 파울라너는 분명 한국에서 따서 마시던 캔 속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곁들이는 맥주로서의 한계는 여전히 분명해, 특색이 강하지 않아 그 어떠한 안주와도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지만, 동시에, 위스키 한 잔 같은 그저 술로써의 정체성을 주장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시킨다면 능히 선택지 중 최상단에 위치할 수 있으나, 술로서의 맥주 한 잔을 오롯이 즐기러 온 뮌헨에서 마시기엔 개성이 약한,


그 옅은 색채가 내가 경험한 파울라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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