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2022년의 나는 꼬박 스무 밤에 하루씩을 공항에서 노숙했다.
그에 비하면, 달마다 하루의 밤을 공항에서 보내는 올해의 사정은 훨씬 나은 편이다. 더군다나 엘살바도르가 올해 방문한 마흔 번째 나라이고, 평균적으로 주마다 나라를 갈아치우며 여행했음을 고려한다면 꽤나 훌륭한 성과다.
그렇다 한들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룩한 것은 아니고, 그저 돈이 없어 여러 밤을 노숙했을 뿐인지라 남는 건 예전보다 조금 더 휘어진 허리와 등에 들러붙는 뱃거죽.
지난해보다는 줄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랄까.
나. 그리고 노숙하는 인간.
스무두 살 인생의 두어 달이 공항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올 들어 일곱 번째. 공항 벤치에 몸을 뉘인다.
밤 11시의 공항은 한적해 벤치에 남은 온기조차 없다.
미국 공항에서 맞이하는 여섯 번째 밤. 스무 하고도 두 살 인생 통틀어 공항에서 보내는 스무아홉 번째 밤이 이리 흘러간다.
오늘 밤을 보낼 공항은 애틀랜타의 허치필드 잭슨 공항이다. 전철 타고 오는 길의 노을이 특히 아름다웠다.
대마초 냄새가 썩은 비누처럼 코를 찌르고, 1년 전이었던가, 새벽 4시쯤 흑인 남자가 오줌을 싸 갈기던 애틀랜타의 마르타 브리즈.
창 밖에 해가 지는데 미풍을 즐길 수는 없다.
손사래 치며 겨우 한 번, 아니면 두 번 이용해 봤음을 강조하는 교통수단.
친구들은 돈이 있다면 우버를 부르고, 정 없다면 다른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차로 공항을 가는데, 오줌과 대마 사이의 복불복(물론 둘 다 당첨될 수도 있다)이 유쾌하지 않다는 데는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르타를 탄다.
돈이 있는 사람이 타지 않으니 돈이 없는 사람만 남는다. 창문 없고 창만 있는 전철에는 찌린내와 웅취, 대마, 온갖 고약한 인생의 악취가 뒤섞여 있어,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흑인 소년 하나가 타서 스피커로 힙합을 튼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 검은색 비니에 회색 후디. 비니 없으면 비듬이라도 흩뿌릴 기세로 머리를 흔들어댄다. 그 와중에도 주위는 살피는 게 같잖다. 아마존 페이보릿츠. 광고가 나올 때면 라디오 채널을 돌린다. 전철이 떠나가라 노래를 틀어대는 녀석을 보며 드는 생각은 '못 배웠나?" 정도. 내 인종차별적 편견을 귀납적으로 강화한다. 미국 공교육의 현주소를 확인한다.
달러 샤스 씨거래.
정체 모를 흰 병에 담긴 샷. 이미 여럿 피워 1 열하고도 조금 남은 담배 여럿. 남자는 옆 칸에서 불쑥 나타나 "달러 샤쓰 씨거래"를 외치곤 대마 냄새를 풍기며 지나간다.
그 사이 문이 열리고 여자 하나가 전철에 올라탄다. 구석구석을 분칠 한 세포라 매장 같은 냄새를 전신에서 풍기는 여자다. 향수를 역할 정도로 떡칠해 숨이 막힌다. 풍선이라도 넣은 것처럼 빵빵해 중력을 무시하는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물에 넣으면 엉덩이 먼저. 정말이지 떠오를 것만 같다.
앞의 남자는 동공이 풀려 있고 그 옆의 중국인은 껌을 찍찍 씹어대는데 저기 어디선가 아이폰 알람이 울린다.
마르타는 마르타였지만 그럼에도 창밖의 노을은 꽤나 아름답다. 두 주 전쯤 시칠리아에서 본 타로코 오렌지 같은 붉은 노을이다. 과즙이 식탁보에 번지듯 하늘을 적시우고 그 끝에는 밤바다가 펼쳐진다.
돈이 없어도 해 보는 건 무료인가 자문한다. 분명 차를 탔다면 끊기지 않고 해를 봤으리라.
일몰마저 유료인 세상이다. 나는 2.9불과 24불 사이에서 고민할 수 없었다. 전철이 지하로 꺼졌다 지상으로 솟구치기만을 기다리며, 찰나를 본다. 2.9불짜리 노을을.
애틀랜타로 돌아온 지 1년 만의 노숙. 이 공항에서의 마지막 노숙도 1년 전.
여전히, 밤 9시면 보안요원들은 짐을 챙기고 퇴근한다. 공항의 희멀건 벽은 더 바래 칙칙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비닐 재킷을 걸치면 덥고 반팔을 입으면 추운 것마저, 긴팔을 입자니 땀방울이 맺히는 그 애매한 온도마저 그대로다.
8시 40분 즈음 줄을 서 검사대를 통과한다. 기술이 발전해 국내선 비행은 얼굴을 스캔해 놓으면 Real ID와 정보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다는데, 개인 정보를 떠나, 영주권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뿐. 그저 앞사람을 따라 걷고, 신발을 벗고, 노트북을 넣고, 팔을 벌렸다 가방을 싸고 에어트랜으로 이동한다.
아무 이유 없이 터미널 끝까지 가본다. 내려 조금 걷다 다시 전광판을 확인하고는 게이트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아무래도 이 공항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본 경험이 없는 건축가가 책상 앞에 앉아 설계한 것이 분명하다. 어떠한 나부랭이인지는 몰라도 공항에서 노숙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만든 공항인 것이다.
팔걸이는 노숙의 주적이고, 얼룩이 굳어 무늬를 형성한 카펫에 눕자니 이미 옷에 정체 모를 무언가가 묻어있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이라고는 빠른 와이파이. 덕분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G9 게이트 앞의 카펫에 누워 휴대폰 스크롤을 하염없이 내리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탑승교를 걸어도 더 이상 설레지만은 않는다.
먼저 플로리다로 떠난다. 주린 배를 참지 못해 브리또를 하나 주워 먹고는 다시 작은 네모상자 속 세상에서 방황한다.
엘살바도르행 비행기 안.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2022년 처음 홀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생경한 감각이다.
기대보다는 알 수 없는 무덤덤함. 설레지만 더 이상 들뜨지 않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대충 알 것만 같은 그저 그런 비행. 예순한 번째 나라. 백일흔세 번째 비행.
비행기는 카리브해와 멕시코 만을 지나 엘살바도르 국제공항에 착륙한다.
한국인이라 입국세 따위는 내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 국가에서 동시에 눈에 띄는 유일한 아시아인이겠다.
노숙은 하루나 방랑은 여전하고,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다. 설레어야 하지만 더 이상 들뜨지는 않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