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하지 못한 부켈레
2015년, 국민 1000명 중 1명이 살해당했다는 엘살바도르로 떠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살인율 1위라는 엘살바도르로 떠나는 건 아니잖아."라며 부모님을 안심시킨 지 고작 1년 하고 8개월 후의 일이었다.
군생활을 하며, 150편에 달하는 세계테마기행을 봤고, 미국에 넘어와서는 날이면 날마다 스카이스캐너를 들락날락하며 중남미 그리고 카리브로의 저렴한 항공편을 뒤졌던 나조차도 갈 생각이 없었던 국가.
그렇다. 엘살바도르는 애당초 선택지에 포함된 적도 없는 나라였다.
엘살바도르에 대해 처음 접한 건 박학다식한 룸메이트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만큼이나 떠나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 2022년 어느 가을, 그날도 어김없이 스카이스캐너를 뒤지다 왕복 150불 수준의 항공편을 보고선, 엘살바도르에 대해 물었다.
친구의 답변은 간단했다. '살인율 1위.'
듣자마자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 다시 엘살바도르라는 단어를 들은 건 2023년 1월 코스타리카에서였다.
네덜란드에서 온 여행자와 포아스 화산을 올랐는데, 그녀는 엘살바도르에도 '산타 아나'라는 비슷한 화산이 있다고 내게 말했다.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호수는 포아스 화산의 청록빛 호수와 비슷해 흥미를 끌었지만 그뿐이었다.
목숨 걸고 갈 곳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곳이 어디 있기는 하겠냐만은...
그럼에도 엘살바도르는 나를 다시 한번 끌어당겼다.
다음은 플로리다였다. 연초,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 콜롬비아 출신 우버 기사 아저씨 왈 좋은 쪽으로 미친 대통령 덕분에 나라가 예전보다 안전해졌다나.
그래서 물었다.
"어느 정도로요?"
"원래 1000명 중 1명씩 살인으로 죽어나갔으면 이제는 그래도 10000명 중 1명 정도 아닐까?"
"음..."
본인 역시 작년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그였지만, 중남미 사람들의 안전에 대한 기준은 한국인의 안전과는 사뭇 달라 믿을 수 없었다.
2022년, 불효자식은 위험하다며 키토 여행을 만류하는 부모님께 "그래도 내가 살인율 1위라는 엘살바도르를 가겠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대꾸했더랬다.
그리고 2년이 흘러 2024년.
그 사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불효자식은 그 엘살바도르로 떠나며, 부모님께 "그래도 내가 갱단이 치는 키토는 미리 다녀와서 다행이지. 엘살바도르도 다시 위험해지기 전에 다녀와야지."라고 변명했다.
나라가 이상하다, 특이하다는 걸 직감하는데 반드시 많은 단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어떠한 장소, 국가로 떠나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는데 반드시 많은 이유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부킹 닷컴 숙소 결제 창에 비트코인이 버젓이 선택지로 존재한다든지. 갱단 5만 명을 집어넣은 후 감옥이 미어터져 증설 중이라든지. 인구 56명 중 1명이 감옥에 가 있다든지.
조금 독특해 보였고, 이제는 ‘비교적’ 안전해 보였으며, 몰렀지만 웬걸, 엘 존테(El Zonte)’라는 지역이 서핑하기 그리 좋다 들었다.
나이브하지 못한 부켈레 대통령은 국민 11만 명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내가 비행기를 끊었을 당시, 독재자든 총통이든, 그를 무엇이라 지칭하든, 그의 노력에 힘입어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은 미주 대륙에서 캐나다를 제외하곤 제일 낮았다.
마침 비행기 가격도 왕복 220불. 수업도 듣기 싫은 데다,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중미 국가 중 안 가본 곳이라곤 확고부동한 살인율 2위의 온두라스, 그리고 왕복 700불의 벨리즈뿐.
그래서 나는 전 살인율 1위,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고, 국민 56명 중 1명을 감옥에 집어넣어 미주 대륙에서 2번째로 안전해진 나라로의 여행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