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비비 무라!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았다. 강식당의 비빔국수가 남대문의 비빔칼국수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은 서울은 비빔칼국수가 없노라고, 어디에서 비빔칼국수를 파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부산에 내가 살던 동네는 비빔칼국수를 맛있게 팔았노라고 답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시장분식'이라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그 이름을 알게 된(인터넷에 뜨길래 알았다) 시장통 칼국수는 비빔칼국수를 팔았고, 나는 선지국과 함께 나오는 비빔칼국수에 열광했다. 오죽했으면 입대 하기 전 마지막 음식은 바로 이 비빔칼국수였으리.
금방 비빔칼국수가 나왔다. '니가 비비 무라!'고 강사장은 외쳤지만 칼국수 골목의 어머님은 직접 손으로 이리저리 면과 양념을 치대면서 비벼서 칼국수를 주셨다. 감격에 겨운 척을 하며(원래 안 해주는 음식인데 해주셨다면서 어머님께 괜히 한마디 하셨기에 나도 그에 맞추어 연기를 더했다) 한 젓가락 면을 당겼다. 그런데... 그런데... 툭하고 면이 끊겼다. 아니, 애초에 그 정도 길이의 면이었던 것 같다. 두꺼운 면은 칼국수라기 보다는 수제비에 가까웠고 애초에 비빔칼국수 양념이 아니었던 양넘은 어중간한 온도에 멈추어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흘러내렸다.
이 맛이 아닌데...
내가 먹던 비빔 칼국수는 이런 맛이 아니었다. 그런데 없는 메뉴를 만들어 주신 어머님을 어찌 탓하리.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어머님이 국물이 있는 칼국수를 턱, 하고 놓으셨다. 맛 비교를 해보라며 뜨거운 칼국수를. 이게 더 맛있을 거라면서. 네, 맛있습니다. 어머님. 이게 이 어중간한 비빔 칼국수보다는 맛있고 말고요. 그렇다고 하지만 실망이었다. 내 칼국수에 대한 역치는 시장 분식이 너무 높여뒀던걸까. 남대문 시장의 칼국수는 내가 맛 보고 싶었던 칼국수의 맛이 아니라 별로였다. 그 사이에 어머님은 자리에 앉은 한 손님에게 보리밥 시키면 칼국수랑 냉면을 서비스로 준다며 보리밥 주문을 유도했다. 손님은 칼국수를 메인으로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어머님의 말빨에 이기지 못하고(?) 보리밥을 시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없는 메뉴를 주문해낸 승리자 손님이었다. 그 결과인 비빔 칼국수의 맛이 별로였다. 아, 신이시여.
그래도 꾸역꾸역 비빔 칼국수 한 그릇, 일반 칼국수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래도 깨끗하게 다 먹네."라며 어머님은 뿌듯해 하셨다. 맛있냐는 물음에 맛있다고 답하며 얼른 계산을 마쳤다. 둘 중 어떤 칼국수가 더 맛있냐는 물음에는 뜨거운 칼국수가 낫습니다,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 칼국수 먹으러 오겠습니다, 며 자리를 떴다. 거짓말일 것이다. 다음에 칼국수를 먹으러 남대문 시장에 올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내 맛의 역치는 낮지만 어쩐지 칼국수에 대한 맛의 역치는 그리 낮지 않음을 확인했다. '니가 비비 무라! 무라 비비!' 비빔 칼국수는 여전히 내가 살던 부산의 동네 시장 한 구석에, '시장통 칼국수'라 부르던 '시장분식'의 칼국수가 기준이요, 왠만한 칼국수보다는 나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