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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Jul 01. 2019

니가 비비 무라! 무라 비비!

맛의 역치가 높지 않아 대부분의 음식을 곧이곧대로 잘 먹는다. 불평 불만도 별로 없어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은 나의 잘 먹는 모습에 괜스레 대견스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남대문 한 켠, 길지 않은 골목에서 파는 음식은 매번 나를 실망시킨다. 고작해봤자 2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나의 낮은 맛의 역치를 넘지 못해 3번째 방문은 없으리라 다짐하게 만든 남대문 칼국수 골목의 칼국수. 그 이야기다.

@tvN <신서유기 외전-강식당2> 홈페이지

최근 tvN <강식당>에서는 경주에서 '강볶이'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신서유기 멤버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음식 대부 백종원 선생의 레시피로 매운 떡볶이에 커다란 꽈뜨로 튀김(4가지 색상이 있는 야채튀김)을 얹은 '꽈뜨로 떡볶이',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타겟을 위해 준비된 '짜장 떡볶이' 그리고 멤버들의 손과 발을 동원에 빚은 반죽으로 만들어낸 '니가 가락국수' 등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음식(이리단 그 연예인들이 준비한다는 것부터가 흔하지 않다)을 판매한다. 나영석 사단의 방송을 즐겨보는 터라 이번에도 방송을 지켜보았는데 지난 시즌보다 덜한 재미에 실망하면서 강식당의 음식도 그리 내 구미를 당기진 못했다. 떡볶이는 애초에 그리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니었고, 면을 좋아하지만 강식당의 사장 강호동의 요리 실력은 괜히 '니가 가락국수'에 대한 기대감을 낮췄다. 시즌 1에서는 강식당의 돈까스를 보곤 다음날에 돈까스를 사먹으러 갔었지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닥이었다. 그닥.


니가 비비 무라!

 

그러다 백선생이 등장해 새로운 레시피를 강사장에게 전수했다. 그건 바로, '니가 비비무라(?)'라고 강사장이 계속해서 소리 친 바로 그 '비빔국수'다.  아, 이 비빔국수는 뭔가 먹고 싶어졌다. 다른 음식은 그닥. 하지만 비빔국수만은 내 구미를 당겼다. 그래, 다음 날 점심은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만들어 먹기는 그렇고 비빔국수 집을 찾아야 하는데 점심에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터덜터덜 집 방향으로 걸어오던 중 떠올랐다. 바로 근처 남대문 시장에 칼국수 골목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비빔국수는 아니더라도 비빔칼국수는 팔지 않을까 하는 것을!


그렇게 홀린 듯 칼국수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년 전에 실망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지만 오늘은 개념치 않았다. 나는 비빔국수가 먹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칼국수 골목에 들어서서 메뉴판을 보는데 비빔칼국수는 없었다. 골목의 어머님들께 비빔칼국수는 안 파느냐 물으니 비빔칼국수는 없고 비빔냉면 맛있게 만들어 줄테니 자리에 앉으라며 호객을 했다. 그런 호객에 당할쏘냐. 골목 끝까지 전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빔칼국수는 없었다. 그냥 돌아가 다른 음식을 먹겠다며 자리를 뜨려는 순간, 한 어머님께서 자신이 졌노라 항복 선언을 하시면서 비빔칼국수를 만들어 주겠노라 하셨다. 나이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았다. 강식당의 비빔국수가 남대문의 비빔칼국수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은 서울은 비빔칼국수가 없노라고, 어디에서 비빔칼국수를 파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부산에 내가 살던 동네는 비빔칼국수를 맛있게 팔았노라고 답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시장분식'이라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야 그 이름을 알게 된(인터넷에 뜨길래 알았다) 시장통 칼국수는 비빔칼국수를 팔았고, 나는 선지국과 함께 나오는 비빔칼국수에 열광했다. 오죽했으면 입대 하기 전 마지막 음식은 바로 이 비빔칼국수였으리. 


금방 비빔칼국수가 나왔다. '니가 비비 무라!'고 강사장은 외쳤지만 칼국수 골목의 어머님은 직접 손으로 이리저리 면과 양념을 치대면서 비벼서 칼국수를 주셨다. 감격에 겨운 척을 하며(원래 안 해주는 음식인데 해주셨다면서 어머님께 괜히 한마디 하셨기에 나도 그에 맞추어 연기를 더했다) 한 젓가락 면을 당겼다. 그런데... 그런데... 툭하고 면이 끊겼다. 아니, 애초에 그 정도 길이의 면이었던 것 같다. 두꺼운 면은 칼국수라기 보다는 수제비에 가까웠고 애초에 비빔칼국수 양념이 아니었던 양넘은 어중간한 온도에 멈추어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흘러내렸다.

이 맛이 아닌데...



내가 먹던 비빔 칼국수는 이런 맛이 아니었다. 그런데 없는 메뉴를 만들어 주신 어머님을 어찌 탓하리.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어머님이 국물이 있는 칼국수를 턱, 하고 놓으셨다. 맛 비교를 해보라며 뜨거운 칼국수를. 이게 더 맛있을 거라면서. 네, 맛있습니다. 어머님. 이게 이 어중간한 비빔 칼국수보다는 맛있고 말고요. 그렇다고 하지만 실망이었다. 내 칼국수에 대한 역치는 시장 분식이 너무 높여뒀던걸까. 남대문 시장의 칼국수는 내가 맛 보고 싶었던 칼국수의 맛이 아니라 별로였다. 그 사이에 어머님은 자리에 앉은 한 손님에게 보리밥 시키면 칼국수랑 냉면을 서비스로 준다며 보리밥 주문을 유도했다. 손님은 칼국수를 메인으로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어머님의 말빨에 이기지 못하고(?) 보리밥을 시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없는 메뉴를 주문해낸 승리자 손님이었다. 그 결과인 비빔 칼국수의 맛이 별로였다. 아, 신이시여.


그래도 꾸역꾸역 비빔 칼국수 한 그릇, 일반 칼국수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래도 깨끗하게 다 먹네."라며 어머님은 뿌듯해 하셨다. 맛있냐는 물음에 맛있다고 답하며 얼른 계산을 마쳤다. 둘 중 어떤 칼국수가 더 맛있냐는 물음에는 뜨거운 칼국수가 낫습니다,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 칼국수 먹으러 오겠습니다, 며 자리를 떴다. 거짓말일 것이다. 다음에 칼국수를 먹으러 남대문 시장에 올 것 같지 않은 느낌이다. 내 맛의 역치는 낮지만 어쩐지 칼국수에 대한 맛의 역치는 그리 낮지 않음을 확인했다. '니가 비비 무라! 무라 비비!' 비빔 칼국수는 여전히 내가 살던 부산의 동네 시장 한 구석에, '시장통 칼국수'라 부르던 '시장분식'의 칼국수가 기준이요, 왠만한 칼국수보다는 나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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