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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Nov 17. 2019

잠이 목적인 여행

늦잠을 잤고, <시베리아 선발대>를 보았다

#시베리아선발대 #시베리아횡단열차 #tvN #여행 #서부투어 #잠 #일요일 #알람 #미국 #러시아 #에세이


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가 지나 있었다. 당연히 아침일 거라 생각한 나는 휴대폰의 시간 설정이 미국 시간으로 되어 있나 보다 생각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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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분명 용산구의 날씨와 시간이었다. 오후 1시면 분명 아침이 아니었다. 이미 한참을 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울리던 알람을 마침 어제 해제한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오후 1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5시 대신 맞춰둔 8시 알람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해 금지 모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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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시베리아 선발대>라는 예능을 본다. 출연자들은 열차 안에서 2박 3일, 3박 4일을 보내다 하루 이틀은 호텔에서 묵는다. 간간이 서는 정차역에서 바람을 쐬는 것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기차 안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기차에서 뭐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서로 이야기하거나 간단한 게임을 하는 것 외에는 먹거나 잠을 잔다. 지겹도록 잠을 자고 또 자고. 또 자고. 영상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출연자들은 아마 엄청나게 잠을 잤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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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작년 여름, 미서부 투어를 떠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삼호관광이라는 여행사를 통해 라스베가스와 그랜드케니언을 포함한 몇 곳의 서부도시를 도는 코스였다. 미국은 넓디넓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정말 한참을 자고, 또 잤다. 일행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이야기할 이유도 없었다. 버스를 뒤로 젖혀서 이 자세로도 자고, 저 자세로도 잤다. 그러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15분쯤인가 둘러보고 다시 버스 탑승. 또 잠을 잔다. 그러다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잠.


그렇게 잠을 자고, 관광을 하면 기분이 멍했다. 멍하니 있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 그렇게 시간이 구분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여행을 잘 가지 않는 나도 시베리아횡단열차식의 여행이라면 한 번쯤 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잠이 목적인 여행이 될까나. 그냥 한참을, 쭈욱 잠이나 자면 될 것 같다는 그런 욕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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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다시 새벽 5시 알람이 울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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