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는 날
이사 가는 날 아침 7시에 일어나 하늘부터 살펴봤다. 전날 뉴스에서 봤던 일기예보에는 광주에 약간의 비 소식이 있었으나, 하늘만 흐릴 뿐 아직까지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창밖을 보며 이삿짐을 옮길 차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이모는 전날 늦게까지 새로 이사 가는 집에 중요한 물건을 먼저 옮겨두고 집안 곳곳을 청소하느라 피곤에 절어있었다. 나는 빠진 짐이 없는지 다시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이모는 수도, 가스공사에 전화하여 잔금을 치르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1층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집 주소를 부르며 몇 시까지 올 수 있는지 통화 중이었다.
이제 진짜 정들었던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시간이다.
짐 확인이 다 끝나고 1층에 내려갔다. 매번 우편함 앞을 지나갈 때마다 오래되어있고 녹슬어있고 먼지가 가득히 쌓인 우체통이 오늘만큼은 더 자주 보고 싶어지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우편함에게 미안했는지 괜히 한번 만져봤다. 이후 손을 탈탈 털고 다시 위로 올라가 이삿짐 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보이지 않아 몰랐던 모습들
모든 짐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였고 나는 방을 돌아다니며 놔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옷장이 나가고 뒤에 같이 뜯겨 나가 있는 벽지와 그 위에 가득히 쌓여있는 먼지들. 그동안 옷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벽지의 모습들은 처참하기 그지없었고 그 모습의 절정은 내 방에서 발견하였다.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벽지에 붙어있는 거대한 곰팡이였다. 그동안 이모가 항상 비가 오면 곰팡이 때문에 죽겠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곰팡이 냄새랑 죽겠다. 머리도 아프고 빨리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 너 방 옷장에 신문지 넣어놨으니 빼지 말고 "
곰팡이 냄새가 너무 나서 빨리 이사 가고 싶다고 밥 먹듯이 말씀하셨지만, 나는 항상 속으로 '아무 문제없구먼..' 생각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했었다.
하지만, 옷장이 뜯겨 나가고 그 뒤에 숨어있는 곰팡이의 모습을 보고서야 왜 이모가 지금까지 곰팡이 냄새와 더불어 옷장에 신문지를 그렇게 꾸깃꾸깃 넣으셨는지 그리고 비가 올 때마다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는지 이제야 알았다.
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고 이해하게 되는 걸까? 왜 그전에는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을까?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도 비슷한 점이 많았던 이사 날이었다.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듣지 못하고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현상들이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가 지각할 때쯤이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져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