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다랑쉬오름 - 짙은 안개와 숨겨진 제주 4.3사건

by 림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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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화려한 에메랄드빛 바다색, 높이 솟아 있는 한라산 그리고 우리를 인자하게 맞이해주고 있는 돌하르방의 도시 제주도. 감귤과 삼다수의 고장이며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이는 해수욕장 그리고 높이 솟아있는 여러 오름들. 하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장소에 숨겨져 있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관광지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며, 잠시나마 화려함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픈 이야기를 직접 보고 느껴보고자 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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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정한 제주의 안개인가?


다랑쉬오름으로 향하기로 마음먹고 움직이던 날이었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였으나, 오름을 올라가는데 지장을 줄만큼의 강수량은 아니었고, 하늘만 많이 흐리고 안개가 자욱히 하늘을 뒤덮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내가 사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랑쉬 오름에 가까워질수록 오른편에 거대한 모습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다랑쉬오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냥 모든 게 갈수록 보이지 않았다. 진짜 안개가 갈수록 더 심해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랑쉬오름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잠시 밖에 내려 주변을 구경하였다.


높이 솟아올라있는 나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히 껴있는 안개와 내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


'이슬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괜히 고집부려 올라갔다가 사고 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지..'


수천번, 수만 번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앞에 보이는 다랑쉬오름 관리사무소에 들어가 정중하게 지금 이 날씨에 올라가도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올라가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답하셨다. 그리고 주차장에 내 차를 포함하여 총 5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내가 막 도착했을 때 한 분은 이미 올라가셨다. 그렇게 나도 마지못해 이끌려 가는 것처럼 장비를 챙겨 이슬비를 맞으며 다랑쉬 오름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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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 오름은 해발 382.4m로 정상까지 35~45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한다고 하나,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많아 다른 오름보다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고 글로만 열심히 봐왔다. 실제로 꾸준히 런닝을 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자신이 있었지만 왜 운동선수들이 체력단련을 할 때 계단을 그렇게 뛰어다니는지 이제야 몸소 깨달았다.


근데 도대체 35분에서 45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는 누구 이야기 일까? 올라가도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나는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고 이제는 그저 땅만 보고 올라가고 있었다.




LSH_1618-RE.jpg 올라가고
LSH_1626-RE.jpg 또 올라가고
LSH_1617-RE.jpg 넌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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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_1629-RE.jpg 솔의 눈???
LSH_1631-RE.jpg 또 올라가고
LSH_1632-RE.jpg 계속해서 걷고 더욱 심해지는 안개


짙은 안개처럼 다랑쉬에 숨겨져 있는 제주 4.3 사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 제주 4.3 사건. 글 서두에 언급을 했다시피 지금이야 우리에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관광도시로 자리 잡았지만, 이 전에 제주 주민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사건 제주 4.3 사건이다.


당시 다랑쉬오름 밑에 있던 다랑쉬마을이 4.3 사건 때 마을 전체가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 다랑쉬오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다랑쉬굴로 사람들이 피난을 갔지만, 결국 유골로 발견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물론 지금 내가 오르고 있던 다랑쉬오름과 약간의 거리가 있는 위치지만...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앞이 희미하며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있는 오르막길과 좁은 길.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과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무서움을 가지고 다랑쉬굴로 피난을 떠난 그때의 시간과 사건은 지금 같았을까?


최대한 그때의 사건을 회상하고 기억하며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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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올라왔지만 볼 수 없었던 다랑쉬오름의 풍경
그리고 길을 잃어버리다.



마침내 오름 정상에 도착했다. 사실, 어느 정도 경관이 보일 줄 알았지만 정말 모든 게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으며, 이놈의 안개는 더욱 심해져 탐방로에서 허튼짓하다가 발을 헛디디는 순간 오름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기도 하다. 바로 앞에 있는 탐방로를 조심히 따라 걷기 시작하였지만 인터넷 그리고 sns에서 봐왔던 정상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의 모습은 아쉽게도 담을 수 없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을 담은 다랑쉬오름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다른 모습을 찾기 위해 조심히 돌아다녔다.


아니, 어쩌면 이런 경험 또한 색다른 경험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심한 안개가 자욱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느껴보는 감정과 이 속에서 찾는 다랑쉬오름의 다른 매력.. 그렇게 나는 다른 매력을 찾기 위해 주변을 조심히 관찰하며 돌아다녔고 목숨을 부지하여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탐방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이내 작은 평상을 발견하였고, 나는 정말 조심스럽게 앉아 물을 마시며 앞을 바라봤다.


내가 다랑쉬오름 정상에 왔다는 걸 환영해주는 걸까? 아니면 산신령님이라도 나타난 걸까? 내가 앉아서 목을 축이는 동안 바람은 더욱 강하게 불기 시작하였고 안개는 더욱 심해져 앞이 더 안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갑자기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과 함께 두려워지기 시작하였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가방을 챙겨 평상에서 일어났는데..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내가 어디로 내려가야 하는지 길을 까먹었은 것이다. 심지어 안개까지 자욱히 껴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기에...


나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빙빙 돌며 이리저리 쳐다보기만 하고 갈길을 잃고 두려움에 빠진 발걸음으로 제자리만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또한, 지금 여기서 이상한 길로 조금만 갔다가 오름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으니..


넓은 다랑쉬오름 정상에 자욱한 안갯속, 혼자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 때 내 귀를 의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뒤를 돌아보니 오름 정상에 올라온 등산객분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최대한 침착한 표정과 말투로 선생님에게 여쭤봤다.


"안녕하세요. 혹시 내려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나를 내려가는 길 시작 지점까지 안내를 해주며 걸어가는 동안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짧은 작별인사와 함께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지셨다.


"잘 가요! 건강하고! 제주에 또 와요!"



LSH_1689-RE.jpg 길 잃은 나를 살려주신 귀한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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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그리고 한 편의 모험 같았던 시간

제주의 안개에 막혀 아름다운 자연이 만든 곡선의 미학 다랑쉬오름의 경관을 보고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더 큰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다랑쉬오름의 정상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마치 게임 속 거대한 악마 보스를 무찌른듯한 느낌이 들었고 조금이나마 성장한 느낌이랄까? 악마 보스를 잡고 돌아온 퀘스트를 성공한 느낌이었다.


처음 올라갈 때 씩씩거리며 내가 여기를 왜 올라왔을까 생각을 하며 올라가기도 하고, 4.3 사건 당시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올라가기도 하고 정상에 앉아 잠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였고 그 속에서 도와준 은인을 만나기도 하였던 시간.


쉽게 자주 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닌 터라, '온 김에 끝까지 찍고 돌아가자'라는 무모한 생각에서 시작된

다랑쉬오름에서의 추억..


다른 사람들은 다랑쉬오름을 떠올리면 가장 높이 솟아오르고 웅장하며 오름의 여왕이라 칭하겠지만


나에게는 잊힐 수 없는 그리고 정말 나에게만 있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왔다.



우리 인생과도 정말 비슷한 경험을 만들어줬던 다랑쉬오름. 안개가 자욱하고 아무리 악조건 속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단 도전을 하여 꾸준히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성장해있다는 이런 이야기 말이다.


글을 작성하는 지금도 모든 과정이 다 생생히 기억난다.



부디 이때의 기억과 이야기가 좋은 밑거름이 되어 나에게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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