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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Oct 15. 2020

아이 때문에 울게 될 줄이야

아이를 통해서 본 천사의 모습

"이 세상에 저는 혼자인 것 같아요.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아이가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학원에서 봐왔던 아이들은 보통 친구와 싸워서 울거나, 혼나서 울거나 아니면 뭔가 자기 맘에 안 드는 게 있을 때 울었는데 이 아이는 뜻밖의 이유로 울고 있었다. 내 눈에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거렸다.


"선생님 울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서럽게 울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고개 들더니 나를 쳐다봤다. 왠지 눈물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아이 눈을 피해 천장을 봤다. 우는 거 아니라고 말했다. 단순히 '마음이 아팠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서럽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가 준 희망이라는 선물 덕에 어딜 가서 누굴 만나도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단기로 하는 일 말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해외 영업직으로 회사에 취직했지만 반복되는 야근과 수직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일하는 게 버거워 또 그만뒀다. 그래서 급여가 낮더라도 스트레스 적고 야근 없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학습지 교사를 그만둔 후로 다시는 아이 가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어학원 랩실에서 아이들에게 간단한 영어를 가르쳐 주며 관리할 선생님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면접 갔더니 오늘 어떻게 수업하는지 한번 보고 결정하라고 하셨다. 보통 다른 곳에서는 면접 보고 나면 다음에 연락해 주겠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일을 할지 말지 나보고 결정하라고 하니 조금 의아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쟁터를 봤다. 한 선생님이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을 돌보고 계셨는데 한 아이가 자꾸 돌아다녔다. 제발 앉으라고 몇 번을 얘기하는데도 그 아이는 계속 돌아다녔다. 어떤 아이는 옆자리 아이가 공부하는 걸 계속 참견하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공부하다 말고 나한테 오더니 내 손에 스티커를 붙이고 갔다.


"제가 여기서 제일 학원 오래 다녔는데 선생님이 그동안 다섯 번이나 바뀌었어요."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아이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왜 선생님들이 그렇게 많이 바뀌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계셨고 난 그 전쟁터 가운데에 멍하니 서서 '이 일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장님이 머쓱하게 웃으며 다가오시더니 일하실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하하하 아무래도 못 할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내 입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원장님이 정말 고마워하시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씩이나 하셨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옥문이 열렸다. 예전에 학습지 교사했었을 때가 정말 편한 생활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역시 사람은 극강의 최악을 경험하고 나면 이전에 겪은 최악은 가볍게 느껴지나 보다.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라서 처음 몇 달간은 소리를 많이 질렀다. '조용히 해', '하지 마', '안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앞에서 하는 공부이다 보니 몰래 게임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컴퓨터가 오류 나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마다 자리로 가서 게임을 못 하게 하거나 오류를 해결해 줘야 했다. 한꺼번에 여러 명이 도움을 요청하면 한 명씩 가서 봐줘야 했는데 한 아이를 먼저 봐주면 다른 아이가 왜 자기한테 먼저 안 오냐며 울고, 또 다른 아이는 내가 올 때까지 계속 소리치며 나를 부르고, 그사이에 어떤 애는 옆에 있는 아이를 방해하고, 내가 정신 못 차리는 사이에 어떤 아이는 밖으로 탈출하고 있고, 우는 애 달래느라 그 애 잡으러 가지도 못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회사 다니기 싫다고 던 친구들이 집에서 육아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차라리 다시 회사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아이들과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늘 화를 내니까 조용하고 얌전한 애들은 나를 무서워했지만,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아이들한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원장님한테 얘기해서 선생님 자르라고 해야겠어."

"자꾸 그러면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학원 끊을 거예요."


조용히 시키고 통제하려고 하는 내게 어떤 애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린애들이 하는 말에 상처받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상처가 됐다. 내 무릎에 앉는 걸 좋아하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옆에 있어야만 공부하는 애도 있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니까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학원에서 일하면서 '우리 부모님 마음이 이랬겠구나'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엄마께 짜증 내고 화냈을 때, '네가 하는 말이 상처된다'라고 하셨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고, '네가 어렸을 때는 아빠 무릎에 앉아서 떠나질 않더니 이제 아빠 신경도 안 쓰는구나!' 하며 서운해하시던 아빠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런 게 떠오를 때면 일하다가 울컥했다.


학원에 매일 지각하고 항상 옆 친구와 떠들고 입만 열면 욕설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혼내도 소용이 없었다. 그 패턴은 늘 반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빈 강의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걸 보게 된 거다.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선생님은 알 필요 없어요."


내 손을 뿌리치며 그 아이가 말했다. 매일 말도 안 듣고 무표정이던 아이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고 나니,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아무에게도 말 안 할 테니 나한테만 말해 달라고 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아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학원을 많이 다니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을 가야 하고, 모든 학원을 다 갔다 오면 밤이 된다고 했다.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이 자기를 맡길 곳이 필요해서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낸 다는걸. 친구랑 놀고 싶은데 자기는 온종일 학원에 있기 때문에 놀 시간이 없다고 했다. 외동이라서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다고 했다. 잘못을 면 엄마 퇴근하시고 엄마에게 한번, 아빠 퇴근하시고 나면 아빠에게 또 한 번 혼나는데 그때마다 자기는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매일 욕하면서 싸우시는데 그러다가 자신에게 불똥이 튀면, 보육원에 보내버린다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진짜로 보육원에 보낼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자기편을 들어주거나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이 세상에 자기는 혼자인 것 같다며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며, 그동안 그 아이를 대했던 내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루에 여러 학원에 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서, 이동하는 시간에 음식 사 먹느라 지각한다는 걸 모르고 늦지 말라고 혼냈던 모습, 학원 다니느라 친구들이랑 놀 시간도 없고 외동이라서 외롭게 지내는 그 아이에겐, 옆 친구와 대화하는 게 유일하게 또래와 소통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모르고 떠들지 말라고 혼냈던 모습, 매일 싸우시는 부모님에게 듣고 배운 욕인지도 모르고 왜 그런 욕을 하냐며 혼냈던 모습.


그 아이의 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매번 그 아이의 말을 변명으로 여기고, 말 안 듣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나 또한 부모님이 싸우실 때마다 불안함을 느꼈었는데, 내가 느꼈던 그 불안함을 이 아이도 지금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쓰라렸다.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서 아무에게도 말 안 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그 아이의 부모님에게 연락했다. 간략하게 아이의 심정에 대해 말씀드린 뒤 오늘만큼은 제발 아이에게 화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다행히 두 분 모두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학원에 왔다. 그동안 무표정이거나 인상 쓴 표정만 봐서 몰랐는데 웃으니까 너무 귀여운 얼굴이었다. 내게 뭔가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열어보니 닭강정이었다. 보통 다른 아이들은 내게 뭔가를 주면 스티커나 사탕, 아니면 쿠키 같은 것들이었는데 닭강정이라니,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선생님 덕분에 엄마 아빠에게 처음으로 혼나지 않았다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너무 기뻤다. 그 아이에게도 천사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 이후로도 그 아이는 매일매일 김치볶음밥, 라면, 김밥, 주먹밥 같은 것들을 사다 줬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나한테 쓰는 게 마음에 걸려서 앞으로 안 사다 줘도 된다고 해도 계속 사다 주는 바람에, 아이를 타일러 달라고 아이 어머님께 말씀드려야 했다. 먹을 것을 사다 줘서 그렇다기보다는 철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고마움에 대해 표현을 한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아이도 똑같이 외로움과 슬픔을 느낀다는 것도. 천사 같은 아이의 모습을 보려면 혼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도 들어주는 게 필요하다는 걸 학원에서 일하면서 배워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야고보서 1:19 새 번역


My dear brothers and sisters, take note of this: Everyone should be quick to listen, slow to speak and slow to become angry,

James 1:19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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