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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Oct 13. 2020

희망이 주는 영향이 이렇게 클 줄이야

인생에 반전을 주는 선물

"우리 아버지는 서른 중반까지 거의 백수나 다름없으셨어. 다른 사람들이랑 너 자신을 비교하지 마. 아직 너의 때가 오지 않은 것뿐이야. 언젠가 너의 때가 분명히 오게 될 거야."


이제는 한 기업의 사장이 된 아버지를 둔 친구가 말했다. SNS에서 보이는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우울해하던 나에게 끊임없는 칭찬과 희망을 부어주는 친구였다.


"너는 남의 얘기 들어주는 걸 참 잘하는 것 같아."

"너는 나중에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계속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희망은 내 인생에 반전을 주는 선물이었다.




당구장 알바를 하면서 자유롭지 않은 자유에 점점 지쳐 갈 때쯤, 손목에 염증이 생겼다. 당구공을 기계로 닦다가, 제대로 안 닦인 부분을 일일이 손으로 닦다 보니 손목에 무리가 왔다. 퇴근하면 한의원 가서 침 맞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염증이 낫지 않아서 일을 그만뒀다. 또다시 백수가 된 것이다. 매일 뿌리 염색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아예 까만색으로 염색했다. 머리 색깔이 까매지니까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


알바를 찾아보다가 일하는 시간 대비 수입이 괜찮았던 판촉 알바를 하게 됐다. 각종 제품 시연, 시식, 시음 판촉 알바를 했었는데 내가 권장하는 제품을 손님들이 사 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장난감 시연 판촉을 했을 때는 아이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쳐 주면서 권장 판매를 했었다. 그때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께 사달라고 떼쓰고 울기도 했다.


예전에 학습지 교사할 때는 아이가 울면 당황스러웠는데 여기서는 아이가 울면 부모님이 장난감을 사 가더라. 그래서 울면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웠다. 아이들 부모님께는 왠지 미안했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시식 판촉을 잘 안 하지만, 예전에 빵 시식 판촉을 할 때는 마감할 때 남은 빵들을 챙겨주셔서 좋았다. 시음 판촉할 때는 계속 마시려고 하는 손님들이 가끔 있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서서 일하면서 멘트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어려운 점은 없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괜찮았다. 일이 있을 때만 일하고 없을 때는 계속 쉬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특별할 것 없이 살았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사는데, 나는 이렇게 평생 알바만 하다가 혼자 쓸쓸하게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한 친구를 통해서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됐고, 그 친구는 내게 희망이라는 큰 선물을 줬다. 그 선물은 영향력이 대단했다.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내세울 게 없어서 얘기를 들어줬을 뿐이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얘기 들어주는 걸 참 잘한다고 했다. 살면서 그런 것도 잘하는 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걸 장점이라고 말해 준 사람도 없었다.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을 해보라는 친구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마침 스태프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친구가 그곳에 지원해보라며 응원해 줬다. 어느 날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고, 친구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해줬다.


그 친구는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동안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별거한 것 없이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벙벙했다. 한편으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소에서 일한 지 어느덧 5년 차가 됐다. 정신병원 입원을 반복하며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던 내가, 한 곳에서 이렇게 오래 일한 적은 처음이었다.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건 넌데 네가 무슨 상담을 해준다고 그래?"


때로는 가족이 하는 말이 남이 하는 말보다 더 아프게 와닿을 때가 있다. 처음 이 상담소에서 일하게 됐을 때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셨다. 병원에서 상담받는 딸이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한다고 하니 기가 찰 만하다. 엄마 말씀을 듣고 나니, 내 상태도 온전치 않은데 내가 과연 남 얘기를 듣고 위로나 조언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다 보니, 점점 나에게 집중된 시선에서 벗어나 남의 아픔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나도 같이 치유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돼서 같이 울 수 있었고, 사람들이 내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벅찬 기쁨을 느꼈다.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일 때, 비로소 온전함을 이뤄가는 것 같다.


가끔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오면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런 사람들을 가둬서 사회에 못 나오게 해야 한다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2015년 11월에 세계정신 재활대회가 열렸다. 히즈빈스 커피라는 카페에는 정신장애가 있는 분들이 바리스타로 일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김 모 씨(중증 정신장애)가 45개국에서 모인 전문가들 앞에서 10분간 영어로 소감을 전달하면서, 전 세계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줬다고 한다.


히즈빈스 설립 초기 멤버인 이모 씨는 정신질환을 26번 앓은 이력이 있지만, 히즈빈스에서 장기근속을 한 뒤 장애등급이 비장애인 수준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이곳에 근무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결혼도 했다고 한다. 히즈빈스는 채용된 장애인 바리스타에게 지역사회 전문가 7명이 붙어 케어하는 다각적 지지 시스템을 병행하고 있다. (출처: 대구신문 https://www.idaegu.co.kr)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가둬서 사회에 못 나오게 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해결책이 범죄를 예방할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살아있어도 잘 살아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을 해치거나 자기 자신을 해친다. 나의 인생에,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에 반전이 생기게 하려면 희망이라는 선물이 필요하다. 이 선물은 돈이 없어도 줄 수 있고, 받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절망 가운데 있다면, 희망을 주고 받으며 인생의 반전을 기대하길 바란다. 언젠가 그 반전의 때가 분명히 오게 될 테니까.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욥기 11:16-18


You will surely forget your trouble, recalling it only as waters gone by. Life will be brighter than noonday, and darkness will become like morning. You will be secure, because there is hope; you will look about you and take your rest in safety.

Job 11:16-18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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