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처음으로 화를 냈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며 속상해하신 적이 있었다. 성경이 눈에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단점도 눈에 들어왔다. 성경에 나온 말씀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자꾸 바꾸려고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찰이 심해졌다.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내가 바로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걸 그땐 모르고 있었다. 예수 믿고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한동안 피부도 거칠고,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너무 피곤했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던 적이 있다. 생리통은 늘 심했고 종아리 혈액순환도 안돼서 약을 먹었다. 홍삼이 피로에 좋다길래 먹었는데 홍삼 먹은 날은 이상하게 더 피곤했다. 탈모 때문에 두피 치료 센터를 가봤더니, 밀가루를 끊지 않으면 여자 대머리가 될 거라고 했다. 이 모든 증상에는 한 가지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니 백혈구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낮다고 했다. 의사는 해결책이 딱히 없다며 운동하면 조금 도움이 될 순 있을 거라고 했다. 속 시원한 해결책을 얻지 못해서 답답했던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채식 후 여러 가지 병을 고친 사례를 보게 됐다.
채식은 예수만큼이나 새로운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래서 이왕 할 거면 채식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음식을 제한하는 비건 식단을 하기로 했다. 비건은 고기뿐만 아니라 생선, 달걀, 유제품 그리고 동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식품을 제한하는 식단이다. 건강, 동물, 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동물이나 환경을 위해서 비건을 시작한 사람들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옷, 신발, 가방, 화장품과 같은 물건 중에서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거나 동물 실험을 하는 제품들을 이용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건강을 위해 도전했기에 처음엔 식단만 비건식으로 했고, 빵에는 어차피 비건이 못 먹는 달걀, 유제품이 들어가니까 이참에 밀가루 음식까지 같이 끊기로 했다.
채식하고 밀가루까지 끊고 나니 앞서 말했던 증상들이 다 없어졌다. 생리 전 증후군 및 생리통이 없어져서 거의 10년간 먹었던 생리통약을 끊게 됐고, 종아리 혈액순환 약도 끊게 되고, 피부가 좋아지고, 피곤하지 않아서 아침마다 알람 없이도 눈이 반짝 떠졌다. 머리카락 빠지는 것도 현저히 줄었다. 다이어트는 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채식 전도가 삶의 1순위 목표가 되었다. 채식하면 건강뿐만 아니라 동물과 환경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경험한 채식의 유익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고 그다음으로 사랑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순서가 바뀐 목표가 나 자신과 사람들을 괴롭게 하게 될 줄도 모르고.
채식을 전하기 위해 블로그도 만들고 유튜브도 만들어서 내가 만든 채식 음식들과 제품 후기를 올리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재밌었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채식이었고,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앱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정부 지원사업에 도전했고, 천만 원의 지원을 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천만 원으로는 자금이 부족했기에 도중에 포기했다.
나중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내가 직접 요리한 비건 음식을 청년들과 함께 먹으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의퍼실리테이터를 맡게 됐다. 점점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고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말씀하시는 엄마께, 동물과 환경을 위해 엄마는 무슨 노력을 했냐며 쏘아붙이고, 채식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발끈하며 분노했다. 나중에는 제대로 된 비건이 되기 위해서 환경을 해치는 아보카도, 팜유가 들어간 음식도 끊었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 가방, 신발을 쓰지 않고, 동물 실험을 하는 화장품은 쓰지 않으려고 했다.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면서, 세상에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고 불평했다. 성경 말씀을 내게 적용하지 않고 늘 남에게 적용하며 비난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딸이 보고 싶다며 술 취해서 전화하는 아빠께, 앞으로는 술 먹고 전화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대했다. 내 지난 과거 생각은 못하고, 술 먹고 방탕하게 사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술, 담배 끊고 안 하던 집안일도 하고 요리도 시작한 딸의 모습이 좋아서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엄마께, 허무한 것들 자랑하지 말고 썩어 없어지지 않는 것을 자랑하라고 소리쳤다. 고민을 털어놓는 크리스천 친구에게는 내 얘기를 더 많이 했고, 친구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친구의 말을 딱딱 자르며, 기도만 하지 말고 성경을 읽으라고 강요했다. 친구와는 말싸움이 시작됐고, 부모님은 서운해하시는 날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내게 일어났던 기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보였던 성경 말씀이 더는 보이지 않았고, 사랑스럽게 보였던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식 못 하는 사이에 아름답게 보였던 풍경들도 어느샌가 색깔을 잃었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어떤 모녀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TV 속의 딸은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다정하게 말하지 않았다. 짜증 내고 화내고 먹고 자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도 더 많은 걸 요구하고 불평했다. 항상 찌푸린 표정의 딸은 전혀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는 딸이 예쁜데 딸은 자신을 너무 싫어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속상해하는 어머니 인터뷰가 나왔다. 그 딸은 완전히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내 모습은 추악했고, 한심했고, 이기적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부모님과 하나님은 이런 내 모습마저도 사랑해 주고 계셨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그 모습을 바꾸려고만 했다.
채식해야만 건강, 동물, 환경에 유익을 주는 삶이라고 외쳤다. 다른 게 우선이 되니 사랑이 우선이 될 수 없었고, 내 안에 사랑이 없으니 사랑이신 하나님은 전해질 리 없었다. 사랑 없는 사람이, 사랑을 전한다고 착각하니까 마찰만 생겼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나처럼 사랑 없이 남을 판단만 하는, 자칭 믿는 자라고 착각하던 사람들을 꾸짖으셨다. 나는 그동안 조건 없이 받은 사랑을, 조건부로 전하고 있었다. 육식 끊고 술과 담배는 끊었지만, 사랑이 끊어져 있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못난, 세상이 싫어하는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인간이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 사랑이 인간을 변화시킨다. 크리스천에게 사랑이 없으면 크리스천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크리스천인가. 나같이 크리스천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은, "네가 대체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이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넘어질 것을 안다. 그렇지만 삶의 목표 1순위를 사랑으로 두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그분께 맡긴다면 그분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결해 주실 거라 믿는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or of angels, but do not have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do not have love, I am nothing.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give over my body to hardship that I may boast, but do not have love, I gain no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