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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임은정 Aug 04. 2022

나를 깨우는 알람, 고난


“검사받으러 가셔야 해요.”

자고 있는데 누가 몸을 흔들어 깨웠다. 간호사의 말에 벌떡 일어나 시계를 봤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환자의 삶에 익숙했던 내가 이젠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다니,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이 시간에도 분주히 일하시는 분들 덕분에 새벽에도 검사받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의료진분들께 힘을 더해주시고, 엄마의 검사 결과 이상이 있다면 치료받고 어서 회복하실 수 있게 도와주시길...

-2022.07.04.


검사받으러 가신 엄마를 기다리면서 썼던 글인데, 써놓은 지 벌써 한 달이 됐다. 지난달에 아빠께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가셨다가 정밀 검사를 권유받고 입원하신 적이 있었다. 검사 후에 대동맥이 막힌 것이 발견되어 급히 시술하셨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시술이 잘 되어 경과 본 후 퇴원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한숨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엄마까지 입원하시는 일이 벌어졌다.


얼굴에 마비가 오고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가 있어서 진료받으러 가셨는데, 병원에서는 뇌경색이 의심된다며 바로 입원을 권유한 것이다. 딸이 걱정할까 봐 자세한 얘기를 안 하셨던 엄마가, 내가 일 끝난 시간에 맞춰 연락하셨다. 당장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인데 딸이 못 오더라도 다른 사람 구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뇌가 정지된 기분이었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지금 제대로 탄 건지, 방향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그 당시에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였고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들도 있어서, 선뜻 간병하겠다는 말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그 순간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했을 때 모든 일을 다 제쳐두고 달려오셨는데, 나는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 엄마 곁에 있는 게 효도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내가 병간호하겠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구토 때문에 아무것도 드시지 못해서 배가 고프신 상황이었는데, 마침 아빠께서 같은 병원에 계셨기에 엄마께 죽을 가져다주셨다고 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입원하셔서 당황스러웠지만, 이러다 병원에서 아빠랑 둘이 정들겠다는 엄마의 말씀에, 심각한 상황에서도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새로운 역할을 맡기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간병했다고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이제는 내 차례가 온 거로 생각하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소식을 들은 몇몇 분들이 기도해주시고, 자신도 겪어봤기에 내가 얼마나 힘들지 공감한다는 말을 해주셔서 큰 위로와 힘이 됐다. 내가 온전히 부모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내 업무를 대신 해줬던 상담소 멤버들에게도 무척 고마운 마음이다.


엄마가 계신 병동은 뇌 관련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입원하는 병동이라, 말도 못 하고 못 움직이시는 분들이 많았다. 옆 침대에 계신 분들도 모녀지간이었는데, 대화 나누는 소리를 한 번도 못 들었다.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대소변을 처리해드리고, 묵묵히 밥을 떠먹여 드리는 따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의 상태는 심각한 편이 아니었기에 대화하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그분들을 볼 때면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우리 부모님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했었는데, 주변을 보니 기도가 시급한 분들이 많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분들을 위한 기도가 터져 나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속에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었다. 주시는 이도 하나님,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라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분명히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큰 계획이 있으실 거라는 확신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간 소중함을 잊고 일상에 치여 살았는데,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또 주어졌으니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찔했던 순간도 어느새 다 지나가고, 지금은 부모님 두 분 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를 알코올중독전문병원에 입원 시키는 게 좋을지 엄마와 의논했었는데, 이제는 아빠가 술도 끊으시고 나보다 교회에 더 잘 다니셔서, 가끔은 이게 현실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부모님의 사이도 좋아지셔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요즘이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고난은 알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로 나를 깨워 정신 차리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 끝난다. 깨어서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고, 끝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 고막을 터지게 하는 게 아니라, 깨우는 게 알람의 목적이듯이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며,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잠시동안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기뻐하십시오.

베드로전서 1:5-6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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