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 읽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아이와 무엇을 하면서 노는 것이 즐거울까하는 것이 가장 고민스러웠다. 둥이 육아를 했던 나로서는 잘 고른 육아템 하나가 그렇게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는 늘 장난감이 넘쳐났다. 쏘서, 바운서처럼 앉은자리에서 점프하면서 몸으로 노는 장난감에서부터 국민 문짝이라고 불리는 러닝홈에 이르기까지 아이들 놀이터인 거실이 커다란 장난감으로 가득 찼던 때도 있었다.
집 청소하고 삼시세끼 밥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나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거울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던 유아기 시절에는 매일 장난감을 주문하고 택배를 뜯는 것이 하루 일과에 포함될 정도로 아이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아이들이 잠시나마 혼자서 노는 그 짧은 5분, 10분은 엄마인 내가 혼자서 화장실도 가고 제정신으로 밥을 음미하며 먹을 수 있는 귀하디 귀한 찰나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시작한 돌 전후로는 주위에 사는 언니, 오빠들이 물려준 책이라면 무조건 받아와 책장을 가득가득 채웠다. 몸으로 놀아주거나 인형놀이하며 놀아주는 건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어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누워서 혹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껴지곤 했다. 물론 아이가 둘이다 보니 서로 경쟁하며 열 권씩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땐 결국 목소리가 갈라지며 급히 책 읽기를 마무리하곤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심심해할 때면, '우리 책 읽을까?'라며 책으로 놀자고 설득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께서 성탄절 행사 중 일부 프로그램은 엄마들이 진행해 주십사 부탁을 하셨다. 나는 노래, 연극, 스토리텔링 등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 그나마 가장 수월해 보이는 이야기 들려주기 시간을 맡았다. 처음에는 어찌나 어색하던지, 우리 아이들만 데리고 이야기를 읽어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 올라와 조금은 당황했던 터였다. 어찌어찌 맡은 부분을 마치고 내려왔는데 행사가 끝난 뒤 선생님들이 찾아오셔서 무척이나 칭찬을 해주셨다.
"어머님, 이야기를 정말 잘하시는데요? 아이들도 저희도 집중해서 너무 재미있게 잘 들었어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해주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날 함께 했던 다른 부모님들도 연거푸 다가와 너무 재미있었다며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겸손히 손사래를 치다가 나중에는 '그... 그런가요?'라고 말하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던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그날 이후부터 아이들과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좀 더 즐거워진 것도 사실이다. 기왕 읽어주는 거 지문과 대화문을 구분해서 좀 더 실감 나게 읽기도 하고 평소보다 기운이 넘치는 날에는 성우처럼 이 인물, 저 인물의 목소리를 달리하여 연극하듯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덕분에 너무 신난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다. 목이 아프긴 했지만 나도 아이들도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매일 읽어주는 수많은 책 중에는 아이들을 물론 어른인 내가 읽어도 재미있고 코끝이 찡하기 까지한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책 읽기는 아이들만을 위한 시간이 아닌 나의 지친 마음도 위로해 주는 휴식시간이 되어갔다.
아이들이 커가고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책을 활용해서 노는 방법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책을 읽고 잠드는 날도 많았지만, 이야기 속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시간이 넉넉한 날이면 좋아하는 책을 골라와 주인공을 그리고 오려 붙이기도 하면서 우리의 '책 읽기'는 '책놀이'로 발전해 갔다.
갓난아이 시절부터 시작된 '어떻게 놀아줘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만 다섯 살이 지난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다만, 아이들도 나도 함께 즐기며 소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놀이'로 '책놀이'가 자연스레 자리를 잡으면서 '오늘은 또 무얼 해야 하나'라는 막연한 매일의 고민들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오늘은 어떤 책으로 뭐 하고 놀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하원하기 전, 그간 사모은 그림책을 나만의 방식대로 큐레이팅하면서 '오늘 어떤 책으로 어떻게 놀까?'를 생각하며 '책놀이'를 준비해 본다. 집안의 소품이나 서가에 꽂힌 책이 바뀌면 그 작은 변화도 금세 눈치채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달려와 '엄마, 이건 뭐야?'라며 관심을 보이는 나의 아이들. 그럼 나도 신이 나서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둥이들, 오늘은 엄마가 새로운 책을 준비했는데 이걸로 오늘 또 재미있게 놀아볼까?"
▼해당 에세이는 팟캐스트에서 오디오북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8857?e=2481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