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뿅'하고 등장한 꿈의 직업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by 스윗라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더라."


이 글은 조선시대 유려한 문장가였던 '유한준'이 쓴 문장으로, 당시 최고의 그림 수집가였던 의관 '김광국'이 서화를 화첩으로 만들어 내었던 <석농화원>에 써준 글이라고 한다. 이 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내용이다.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사람은 이를 정말 사랑하게 되고, 그 애정 덕분에 전과는 달리 보이는 그 그림에 매료돼 결국 그저 보는 것에서 그치지 못하고 소장하기에 이른다'


요즘식으로 요약해 본다면 '제대로 알면 결국 가지지 않고는 못 베기는 덕질'의 경지에 이른다고나 할까?


대학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던 작은 광고 캠페인에서 카피로 사용했던 문구인데 근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지금이라도 친구들이 '그때 그 카피 말이야'라고 물으면 입에서 바로 '톡'하고 튀어나올 만큼 익숙한 문구이지만 푸릇푸릇했던 젊은 날에는 이 말속에 숨겨진 의미를 깊게 음미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을 건너 마흔을 앞둔 지금 이 말은 왜 다시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걸까? 그동안 잘 지냈냐고 이제는 진정으로 내 말을 이해하게 되었냐고 묻는 듯이 말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온통 세상의 트렌드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면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리는 사이 나는 정작 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였다. 육아 퇴근(아이들이 잠든) 후, 친정 찬스로 잠시 외출을 나와 산책을 하다가 문득 노래가 하고 싶어 들른 코인 노래방에서 나는 멍해졌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내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발걸음도 가벼웁게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말이다. 도통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가수가, 노래가 무언지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조바심 내며 앉아있다가 결국 노래방 한편에 붙어 있는 인기 가요 중 몇 곡을 부르고서야 집에 돌아왔다.


'맙소사! 내가 나를 모르면 누가 나를 알아줄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 엄마는 처음이라, 서른아홉의 여름은 처음이라 매일매일을 불안하게 흔들리며 살다 보니 바쁜 현생에 밀려 사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스스로는 또 저만치 팽개쳐 두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의 각성을 뒤로하고 또다시 새로운 일들을, 날들을 살아내다가 나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올해 여름이었다. '불혹'이라는 마흔에 꽂혀서야, 그제야 나는 나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단답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이제껏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 돌이켜보니 아쉬웠던 것들, 토닥여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갔다. 그제야 내가 보이는 듯싶다. 내가 나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니 그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


꿈 많았던 십 대 소녀가 가장 푸르른 이십 대에 꿈꾸던 회사에 들어갔을 땐, 꿈과 현실에 괴리에 낙담해 참 오래도록 방황을 했더랬다. 어딘가 있을 진짜 나의 꿈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치열하게도 생각하고 공부도 하며 세상에 묻곤 했다. 도대체 내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마흔을 앞둔 덕에 내 인생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이제야 깨닫는다. 동시에 헛웃음도 난다. 나를 이렇게 잘 들여다보면 쉽게 나오는 답을 나는 왜 그리도 세상에 묻고 다녔을까? 싶어서. 그렇게 덥고도 지지부진한 열한 번의 여름을 보낸 뒤에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내가 동경했던 '라디오 작가', '방송 PD', '광고제작자', '마케터'라는 직업들과 내가 가슴 벅차도록 좋아하는 '음악'과 '극', 뮤지컬'과 '드라마'는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말이다.


오랜 시간 특정한 꿈의 직업을 찾아 헤매었는데 결국 내가 나를 돌아보고 나서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기왕이면 음악과 극이 더해져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지는 '이야기' 말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니니, 그때 보이는 것은 지금과 같지 않더라."


시공간을 초월해 문인 유한준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제 네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느냐?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하고 싶으냐?" 그에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그림책 작가가 되어보려고요.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아 널리 널리 사랑을 받으면 뮤지컬로도 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그거 아세요? 요즘에는 백 살까지 살 수도 있데요. 그 정도 시간이면 저도 선비님처럼 세상에 멋진 이야기 하나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아! 물론 그전에 이미 세상에 넘쳐나는 많고도 아름다운 그림책들을 사모으는 그림책 수집가가 먼저 될 것 같긴 하지만요. 당신의 친구처럼요. 하하하-"


덕질에서 시작된 나의 그림책 사랑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이상, 나를 되돌아보다 꿈의 직업을 찾게 된 예비 그림책 작가의 이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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