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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Mar 17. 2020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슬램덩크> 그래도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청소년 시절 가슴 뛰는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습니다. 농구대잔치의 열기는 겨울을 시작으로 사시사철 가득했고, 허동택 트리오의 기아자동차를 꺾어보려는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선수들처럼 저도 뜨거웠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축구장보다 농구 코트가 붐볐습니다. 점심시간 농구 골대를 선점하기 위해 2교시만 끝나면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는 날이 대부분이었지요(순전히 농구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녀공학 고교에 다녔던지라, 드리블과 슛에 환호해주는 충성스러운 몇 여후배들의 응원에 심취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헝그리 베스트 5>가 잠깐(?) 유행을 탄 작품이었다면, <슬램덩크>는 중·고교 시절을 함께 겪은 동창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 나이 또래분들이 슬램덩크를 모른다면 간첩이라고 할 수 있죠! 슬램덩크 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철학적 사색으로 <그로부터 20년 후>란 책을 내신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그 시절의 추억을 새록새록 되살리는 것에 더해 깊이 있는 생각으로까지 연결해주는, 슬램덩크 팬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당시 매주 소년 챔프 발행일마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의 눈을 피해 서점을 다녀오던 친구들이 꽤 됐습니다. 저도 가끔 사명을 띠고 길을 나섰지요. (“본고사 대비를 위해 시사주간지를 사겠다”며 외출증을 받곤 했는데…. 그 행동이 지금 직업을 예견했던 복선이 아니었나 생각 듭니다.^^) 아련하지만 정겹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불꽃남자 정대만의 슛 폼은 물론 머리 모양까지 따라 하는가 하면, 파리채 블로킹을 한다고 상대편의 머리통을 내려치는 경우도 존재했습니다. 윤대협을 따라 되지도 않는 더블 클러치를 시도하고, 엘리우프를 보여주겠다며 초등학교 림을 흔들다 망가뜨리기도 했습니다. “놓고 온다”, “왼손은 거들 뿐” 등의 말은 농구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왔지요.     


   제가 특별히 좋아했던, 여전히 좋아하는 인물은 상양고의 김수겸입니다. 일단 저와 같은 왼손잡이고요. 감독, 그리고 선수로서 상황에 맞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역할을 해낸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비록 만화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천재 윤대협, 팀 동료까지 갖춘 천재 이정환보다 비중 떨어지는 ‘비운의 천재’ 정도로 스쳐 지나가지만, ‘제대로 된 감독과 동료들만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실제 삶과 업무현장에서는 늘 Resource와 Capablity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가장 현실감이 있는 캐릭터 같고, 적재적소에 요청되는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지 않을까 평가해 봅니다. 김수겸처럼 되려는 마음 때문인지, 속한 곳의 담당업무에 따라 팔색조(까지는 아니고 한 오색조 정도?!)의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슬램덩크가 막을 내릴 때만 하더라도 너무 허무하다고, 작가와 출판사 간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이 결말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듭니다. 실제 인생이 그렇게 쉽게 목적에 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농구대회 우승보다 농구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재활 치료를 받는 강백호나, 겨울 선발전을 준비하는 김수겸이나, 또 여전히 미생인 채 완생을 소망하는 저나…. 모두 밟아가는 그 길 가운데 행복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꼭.


2018년 신장재편한 <슬램덩크>(전 20권) 구매 선물로 받은 포스터. 벽에 붙여놓기엔 다소 큰 2절지 크기다 보니, 아직 책장 위에 돌돌 말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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