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라고 부르기엔 다소 부족한 자그마한 방 양쪽에 저와 아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꽂혀있습니다. 둘의 삶을 합친 이후 10년 아기자기하거나 격정적이었던 다양한 정들이 쌓인 만큼, 여러 종류의 책들로 책장이 채워졌습니다. 그중에는 만화도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결혼 초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책장 저 먼 곳 한켠에 쭈그려 있었지요. 그런데 한두 살 나이 먹어가며 어릴 적[이라지만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봤던(‘읽었던’이라고 쓰다가 “만화는 책이 아니야, 읽는 게 책이고 만화는 그저 보는 거지” 하셨던 아버지 말씀이 떠올라 급히 Backspace 키를 눌렀습니다.) 만화들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슬램덩크>, <미스터 초밥왕>, <고스트 바둑왕>, <플라이 하이> 등 기억나는 것들을 하나 둘 모으다보니 지분율이 제법 높아졌습니다(물론 마니아 분들에 비하면 수량이나 가치 모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鳥足之血’입니다).
그러던 중 최근 15만원에 이르는 거금(이 정도면 ‘거금’ 맞죠?)을 만화책 구입에 쏟아 넣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카페에서 만난 <바텐더>. <소믈리에르> 작가가 과거에 그렸던 것이네요. 칵테일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얽히고 풀리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1권과 2권 두 권을 봤는데 뒤에 펼쳐질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한 겁니다. ‘궁금하면 들여다보자’는 생각으로 인터넷 중고서점을 찾았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는데 도착한 <바텐더> 세트를 보니, 25권까지만 꽂혀있는 <신의 물방울>이 ‘마무리되지 않은 내가 외로워 보이지 않아?’ 묻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애처로운 마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지금까지 그런 생각 든 적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와이드판은 새 상품 말고는 각권으로 쪼개져 있어서, 26권부터 일괄 확보를 위해 5년 이상 묵은 새 만화책 구입을 클릭하고야 말았습니다. <신의 물방울>에 나름 큰돈을 결제한 이후 중고 코너의 책들을 사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뤄졌다고 할까요?
저는 ‘책의 종류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틀릴 수도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글씨가 가득한지, 만화로 채워졌는지만으로 책의 가치가 구분되지는 않습니다.‘만화는 책이 아니다’란 인식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물론 어릴 적 아버지 말씀으로 인해 중학생이 되고나서야 만화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던 저는, 그만큼 더 깊이 있는 생각을 가지고 만화를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말씀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정도일까요?). 물론 담긴 Contents에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화든 다른 종류의 책이든, 책을 읽는(이제 만화책도 ‘읽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수준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력하게 주장해 봅니다! 제 수준이 그리 높은 게 아니란 게 함정이긴 합니다.^^
만화. 제게는(어쩌면 여러분에게도) 지난 추억이 담겨있는 대상이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또, 보고 읽는 재미와 내적 성찰을 갖게해 주기도 하고요. 늘어가는 만화만큼 제 자신의 깊이도 더해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 기대와 함께, 여러 만화 속에 담겨있는 그때와 지금의 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