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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Mar 08. 2020

“그래, 체조를 하길 정말 잘했다!”

<플라이 하이> 즐겁게 함께 일하는 동료를 만난다는 것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저녁식사 이후 식탁에 앉아 게임을 하곤 합니다. 최근 즐기는 건 루미큐브라는 보드게임과, 대학 시절부터 20여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훌라입니다. 이런 게임에선 좀처럼 봐주는 적이 없어 초등학교 3학년인 조카를 펑펑 울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나 봅니다. 올초까지만 해도 제가 상대적 우위에 있었는데, 어느새 아내 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요 며칠 지갑과 마음을 탈탈 털릴 정도로 연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소싯적 게임 좀 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당해낼 수가 없네요. 제갈공명을 향한 주유의 한탄이 남 일 같지 않고 ‘정령 천재에게는 안 되는 것인가’하는 자괴감에도 빠지게 됩니다ㅠ.ㅠ     

훌라 게임의 연이은 패배로 제 지갑이 홀쭉해졌습니다!

   만화도 천재를 다룬 게 많습니다. 그 중 <플라이 하이>는 체조 천재(?)를 소재로 한 만화책으로, 대학생 때 접한 이후 제가 최애하는 작품입니다. 후지마끼 준이 중학교 체조부에 가입해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까지의 과정 속에 재미와 감동, 교훈이 빈틈없이 빼곡히 담겨있습니다. 지금도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면, 특히 요새처럼 아내에게 자꾸 져 의기소침해질 때면 방구석에 앉아 조용히 숙독하고 나서 새 힘을 얻곤 합니다!^^  


   주인공 후지마끼 준. 중학교 1학년 때 체조를 시작한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시아게임 단체전 은메달 획득의 주역이 되고, 2년 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줄거리는 분명 천재의 이야기입니다-갑자기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떠오르네요. ‘추억의 만화’하면 그 작품을 빼놓을 수 없으니 곧 다루겠습니다-. 하지만 34권(+번외 1권)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 대놓고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외치며 평송중학교 체조부에 들어간 후지마끼 준. 그렇지만 체조부에 가입한 실제 배경은 초등학생 시절 뜀틀을 엎어 생긴 공포증을 이겨내려 한 것이었습니다. 체조부에서 후지마끼는 평송의 ‘바보 삼총사’라 불리는 선배들과 러시아 출신 코치, 동료와 경쟁선수 등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습니다. 그리고 훈련에 훈련을 더해가며 기량을 쌓아 올려, 결국 1권 시작 부분의 각오를 현실로 구현해 냅니다. 결과적으로 천재는 맞습니다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천재의 잠재력을 지닌 한 인물의 성장 스토리라는 게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나아가 <플라이 하이>는 후지마끼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 단체의 이야기입니다. 후지마끼의 성장에는 선배 ‘바보 삼총사’와 레이코(같은 학교의 체조여신), 마리코(여자친구), 우에노(동기) 등이 늘 함께합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즐거운 체조’는 분명 고되지만, ▲확실한 목표의식 아래서 ▲서로 배려하고 함께하되 ▲개인으로서도 최선을 다하는 체조입니다. 후지마끼가 놀라운 철봉 기술을 성공시킬 때면 마리코에게 보이는 ‘날개’는 평송 멤버들 간의 깊은 신뢰와 동료애의 산물입니다. 이 같은 관계가 깨졌을 때 ‘즐거운 체조’는 목적을 잃고 기술도 실패하고 맙니다.      


   이는 ‘힘들지만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기업문화, 조직문화 측면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뭔 개소리야?” 할 지도 모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힘들긴 하지만 동시에 즐거울 수 있습니다. 우리 팀의 목표와 방향성을 정확히 알고 서로 협력하며 성과를 내고, 소속 구성원으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면 고된 가운데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갑자기 기업 얘기로 빠졌습니다만, <플라이 하이>는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통해 이 같은 함께하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줍니다.

     

   주인공 말고도 눈에 띄는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우치다 얘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뜀틀의 스페셜리스트’ 우치다. 처음엔 후지마끼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후지마끼에게 체조의 기초를 가르쳐준 사람입니다. 또 무섭게 급성장하는 후지마끼를 바로 옆에서 직접 보아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재능으로 치고 나가는 후배에게 비교의식을 느끼지 않을 리 없죠. 하지만 그는 더욱 힘을 냅니다.  이를 통해 같은 사유로 은퇴를 고민하던 대학 동료를 재기하도록 돕고, 결국 우치다도 후지마끼와 함께 체조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됩니다. 

   들여다보면 이 같은 피나는 우치다의 노력의 결과 또한 혼자 만들어낸 게 아니었습니다. 평송 멤버들과, 평송의 정신이 함께 이뤄낸 것이지요. 후지마끼가 없었다면, 사나다(마루의 귀공자, 평송 동료)가 없었다면 우치다도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었습니다. <플라이 하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제를 놓치지 않고 일관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실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체조선수가 이 만화의 원작자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락성과 함께, 체조에 대한 전문성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웃고 눈물 흘리게 되는 참 재미있는 작품임이 틀림없습니다. 혹 보게 되신다면 ‘읽어보길 정말 잘 했다’ 생각 드실 겁니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못했지만, 이 만화책에 나온 인물들과 에피소드만 가지고도 찬찬히 책 한 권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그에 앞서 일단은, 오늘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아내에게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우치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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